
29일 경북 구미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우상혁(용인시청)이 바를 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는 연이틀 내린 폭우로 인해 오후 9시 45분에 시작됐다. 이로 인해 기온이 17도까지 내려가고 트랙은 젖어 있었다.
그러나 '스마일 점퍼' 우상혁의 비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우상혁은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경기에 임했다. 이번 대회는 그의 오랜 경쟁자인 무타즈 에사 바르심(34·카타르)이 출전하지 않았다.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전날 다른 종목 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하며 다소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높이뛰기 경기는 2m10부터 시작됐지만, 우상혁은 바의 높이가 2m15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올해 참가한 국제대회에서 우상혁의 첫 시도는 늘 2m15였다. 특유의 미소로 도약한 뒤 2m15를 가볍게 넘었다. 이후 2m19, 2m23, 2m26까지 모두 1차 시기에 넘었다. 우상혁 외에 2m26을 넘은 선수는 일본의 토미히로 신노뿐이었다. 신노의 올해 시즌 기록은 2m25였지만, 이를 뛰어넘는 선전을 펼쳤다.
사실상 우상혁과 신노의 결승전이었다. 신노가 먼저 2m29에 도전했지만, 바를 넘지 못했다. 곧이어 우상혁이 힘차게 도약한 후 다소 아슬아슬하게 바를 넘었다. 1차 시기 성공 후 우상혁은 관중석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질렀다. 폭우에도 불구하고 오후 11시까지 자리를 지키며, 자신을 응원해준 팬을 위한 감사의 표시였다. 신노는 이후 두 번의 점프에서 2m29를 넘지 못했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우승을 확정짓자 우상혁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홀가분하게 시즌 기록(2m31)을 넘어설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는 김도균 코치와 사인을 교환한 후 다음 시도로 "2m33"을 표시했다. 그러나 세 번 모두 실패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상체가 바를 넘어갔지만, 마지막에 발뒤꿈치가 걸린 게 아쉬웠다.
경기 후 우상혁은 "늦은 시간에도 자리를 지켜준 팬들의 응원 덕에 나도 힘을 내서 뛸 수 있었다"며 "파리올림픽 이후 더 좋아진 것 같다. 다른 선수들 의식하지 않고 매 경기에 집중하다 보니 재미있고 신나게 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파리하계올림픽에서 부진했다. 메달 권에 들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2m27에 그쳐 7위를 했다. 파리에서 좌절을 맛봤지만, 부담감을 덜어낸 후 점프가 더 가벼워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우상혁은 올해 출전한 5개 국제대회를 모두 휩쓸었다. 지난 2월 올 시즌 처음 출전한 체코 후스토페체 실내대회에서 2m31로 우승했다. 같은 달 슬로바키아 반스카비스트리차에서도 2m28로 1위를 차지했다. 지난 3월 중국 난징에서 열린 세계실내선수권에서는 2m31을 뛰어 우승을 차지했으며, 지난달 카타르에서 열린 왓그래비티챌린지에서는 2m28로 1위를 했다. 왓그래피티는 바르심이 주최하는 대회로 지난해 처음 개최됐다.
바르심은 당초 아시아선수권에 출전하기로 했지만, 개막을 앞두고 갑자기 불참을 통보했다. 대한육상연맹 관계자에 따르면 바르심 선수는 올해 정상 컨디션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육상연맹 관계자는 "바르심은 올해 중동 지역에서 열린 대회에 한 번 뛰었는데, 2m20 이하인 것으로 안다. 나이가 많다 보니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해 국제대회에 나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상혁은 올해 3대 대회 우승을 목표로 삼았다. 세계실내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 그리고 9월 열리는 도쿄 세계육상선수권이다. 앞선 2개 대회를 모두 우승하면서 도쿄 대회도 전망을 밝게 했다.
구미=김영주 기자 kim.youngju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