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학폭 아님 확인서' 피해 학생 부모 사인은 위조"…경찰 수사 의뢰

지난 3월 전북 전주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사이버불링 사건 관련 SNS 단체방 캡처본. 사진 피해 학생 부모

지난 3월 전북 전주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사이버불링 사건 관련 SNS 단체방 캡처본. 사진 피해 학생 부모

학부모, 공문서 위조 혐의 교장 신고 

전북 전주의 한 중학교 교장이 교내 학교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교장이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여럿 중 한 명을 피해 학생 부모 동의 없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가해 추정 학생 명단에서 제외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2일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전주 완산경찰서는 최근 공문서 위조와 위조 공문서 행사 등 혐의로 전주 모 중학교 교장 A씨를 수사해 달라는 신고를 접수해 현재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A교장은 학기 초 해당 학교에서 벌어진 사이버불링 사건 관련해 전주교육지원청이 5월 26일 열 예정이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의 가해 추정 학생 명단에서 특정 학생을 빼기 위해 관련 서류를 허위로 꾸민 의혹을 받고 있다. 사이버불링(cyberbullying)은 사이버 공간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욕설·험담 따위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이번 의혹은 해당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피해 여학생 B양(14) 부모가 지난달 20일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에 A교장 관련 민원을 제보하면서 불거졌다. B양 부모에 따르면 B양은 지난 3월 11일 같은 학교 C군 등 남녀 동급생 2명과 3학년 여자 선배 등 3명으로부터 사이버불링 피해를 당했다. C군 등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방을 만든 뒤 B양을 초대해 욕설·성희롱과 이른바 ‘패드립’을 했다. 패드립은 패륜과 애드리브를 합친 합성어로 부모·가족·친척을 비하하거나 모욕하는 일을 뜻한다. 이들은 해당 단체방에서 B양에게 “눈X 밟아버리기 전에” “죽여버릴랑게” “X신ㅋㅋㅋㅋㅋㅋ” “애미가 뭘가륵첫ㄴ니(뭘 가르쳤니)” 등의 말을 했다. B양 얼굴 사진과 함께 “저 ○○로 날 까?”라고 하거나 음란 영상도 올렸다.

전주 모 중학교에서 벌어진 사이버불링 사건 가해 추정 학생 3명 중 1명에 대한 '학교폭력 아님 확인서'. 피해 학생 부모는 "해당 확인서를 본 적도, 사인한 적도 없다"며 위조 의혹을 제기하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진 피해 학생 부모

전주 모 중학교에서 벌어진 사이버불링 사건 가해 추정 학생 3명 중 1명에 대한 '학교폭력 아님 확인서'. 피해 학생 부모는 "해당 확인서를 본 적도, 사인한 적도 없다"며 위조 의혹을 제기하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진 피해 학생 부모

“교장이 가해 학생 옹호” 

B양 부모는 사이버불링이 발생한 이튿날(3월 12일) 학교 측으로부터 딸의 학폭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같은 달 13일 이 학교 학폭 업무 담당 교사가 B양 부모에게 연락해 “교장 선생님이 가해 학생 중 C군은 빼자고 하신다. 직접적 폭언은 없고 단순히 ‘누나가 만만한듯ㅋㅋㅋ’ 같은 애매한 말만 썼지 않냐”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B양 부모는 “절대 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전주교육지원청이 지난달 16일 B양 부모에게 보낸 학폭위 참석 요청서 내용 중 가해 추정 학생 명단에서 C군이 빠져 있었다.

이에 B양 부모는 지난달 19일 학교를 방문, A교장과 학폭 업무 담당 교사 등에게 항의했다. B양 부모는 이날 C군에 대한 ‘학교폭력 아님 확인서’에 본인과 딸의 서명이 적힌 것을 발견하고 “해당 확인서를 본 적도, 사인한 적도 없다”고 따졌다고 한다. B양 부모는 “A교장이 저희 동의 없이 (가해 추정 학생 3명 중) C군만 뺐다”며 “교장이 피해 학생이 아닌 가해 학생을 옹호하는 게 너무 어이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A교장이 학폭 담당 교사에게 지시해 딸에게 ‘C군이 빠져야 다른 가해자 2명의 처벌 수위가 높아진다’는 거짓말을 해 강압적으로 서명을 받아낸 것 아니냐”고 했다.


이와 관련, 전주교육지원청은 “민원 처리 검토 결과 해당 중학교는 최초 사안 보고부터 회의 개최 요청까지 절차를 준수했으나, 학폭 업무 담당 교사가 ‘학교폭력 아님 확인서’를 배부·회수하면서 피해 추정 학생(B양) 부모에게 가해 추정 학생 3명 중 1명(C군)에 대해 학교폭력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이 생략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학폭 업무 담당 교사가 B양이 제출한 ‘학교폭력 아님 확인서’를 교내 학교폭력전담기구 개최 전에 B양과 그 부모가 각각 동의·서명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없었다”고 했다.

교장 “절차 준수…학부모가 교권 침해”

그러나 ①특정 학생을 학교장이 옹호하면서 가해 추정 학생 명단에서 빼려는 의도성이 있는지 ②‘학교폭력 아님 확인서’에 강압적으로 서명을 시켰는지 등에 대해선 “업무 담당 교사의 학기 초 업무 폭주와 인성·인권 업무 난이도, 사건 발생 시간 경과 등으로 인해 사실 여부 확인과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는 게 전주교육지원청 판단이다.

이에 대해 A교장과 학폭 업무 담당 교사는 전주교육지원청 조사에서 “C군에 대해 ‘학교폭력 아님’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하고 B양 부모와 학생을 심적으로 힘들게 한 것에 대해선 송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C군에 대한 ‘학교폭력 아님 확인서’는 B양이 (본인과 부모의 사인 모두) 자발적으로 서명했고, 해당 서류를 조작하거나 이를 교장이 교사에게 지시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학폭 처리 과정에 일부 착오는 있었지만, 적법 절차를 따랐다는 취지다.

A교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국가의 녹을 먹는 교직자가 그런 나쁜 행동은 하지 않는다”며 “B양 부모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외려 고성을 지르거나 반말 투로 얘기하는 등 교권 침해 요소가 있었고, 사실이 아닌 주장에 대해선 나중에 무고죄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주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폭 전담 조사관 보완 조사와 교내 학교폭력전담기구 회의 개최, 가해 추정 대상 정정을 거쳐 학폭위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