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한 책박람회" 뒤집었다…MZ 바글거린 '전주책쾌'

지난 7일 전북 전주 남부시장 내 문화공판장 작당에서 개막한 '제3회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 행사장에 입장하기 위해 관람객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 전주시

지난 7일 전북 전주 남부시장 내 문화공판장 작당에서 개막한 '제3회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 행사장에 입장하기 위해 관람객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 전주시

92개 팀 참여…이틀간 7800명 방문 

“세상에 하나뿐인 ‘공룡시’ 등 책마다 5~10권씩 가져왔는데, 북페어 첫날에 책 10종 중 4종이 매진됐어요.”  
8일 오후 1시쯤 전북 전주 남부시장 내 문화공판장 작당. 지난 7일부터 이곳에서 열린 ‘제3회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에 셀러(판매자)로 참여한 경기도 수원 화랑 ‘소현문’의 백필균(34) 큐레이터는 “북페어에 직접 참여하는 건 처음인데 관람객이 이렇게 많이 몰릴 줄 몰랐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전날 뒤풀이 때 셀러 대부분이 ‘전주책쾌가 전국 북페어 중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고 했다.

이날 행사장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특히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Z세대 통칭)가 많이 찾았다. 전주시에 따르면 이틀간 7800명이 전주책쾌를 방문했다. 행사장으로 쓰인 작당은 전주시가 25억원을 들여 과일·채소 등을 팔던 2층짜리 낡은 건물을 지난해 4월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한 곳이다.

'제3회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 이틀째인 지난 8일 행사가 열린 전주 남부시장 내 문화공판장 작당이 관람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김준희 기자전주책쾌 기획 의도가 담긴 기획 전시 '책의 기수 책쾌가 온다'. 사진 전주시

‘현대판 책쾌’의 교류의 장

전주책쾌는 서점업이 금지된 조선시대 때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책을 사고팔던 서적 중개상 ‘책쾌(冊儈)’에서 이름을 따왔다. ‘자기만의 깃발을 들고 책의 기수가 되자’는 주제를 내건 올해 박람회엔 전국에서 독립출판물을 제작하는 창작자·출판사·책방 등 92개 팀이 참가했다. 김져니 작가(서울), 이후북스(제주), 책공방(충남 공주)을 비롯해 전주국제영화제·문화저널·전주출판학교가 판매 부스를 운영했다. 인구 63만명의 중소 도시 재래시장에서 하는 도서 박람회가 “힙하다(멋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290여개 팀이 신청해 3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

올해 3회째를 맞은 전주책쾌는 이른바 ‘현대판 책쾌’들이 각자 시·소설·인문서·그림책·사진집 등 신작을 선보이는 ‘출판물 유통 플랫폼’이자 작업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교류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에 뿌리를 둔 전시 그룹 nap(노마드 아트 프로젝트)의 전승혁(30) 작가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유목’ ‘떠돌아다니기’를 콘셉트로 서울 황학동·대림동·북촌 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 등 방문한 지역의 ‘지금 여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만 해 왔다”며 “이를 아카이빙(기록·보관)하는 책을 만들어 자유롭게 발화하고, 우리 관심사와 비슷한 독자·창작자들과 직접 대화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 전주책쾌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지난 8일 '제3회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가 열린 전주 남부시장 내 문화공판장 작당에서 셀러(판매자)로 참여한 '소현문' 백필균(왼쪽) 큐레이터와 'nap' 전승혁(오른쪽) 작가가 나란히 서서 책을 홍보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지난 8일 '제3회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가 열린 전주 남부시장 내 문화공판장 작당에서 셀러(판매자)로 참여한 '소현문' 백필균(왼쪽) 큐레이터와 'nap' 전승혁(오른쪽) 작가가 나란히 서서 책을 홍보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갓 쓰고 선글라스 낀 채 신간 소개 

스튜디오 하프-볼트 조현익(34) 대표의 책 매대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민주노동당(옛 정의당) 당원이자 디자이너인 조 대표는 2018년 지방선거부터 올해 6·3 대선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전국투표전도’를 출간했다. 그는 “사람들의 생각·관점·상상·가치관을 시각화하는 데 관심이 많다”고 했다.    


셀러들은 각자 개성을 뽐내며 책을 알렸다. 갓을 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춤추며 신간을 소개하거나 “3일간 피죽 한 그릇 못 먹음” 등 재기 발랄한 문구로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얼굴 없는 요괴 ‘카오나시’ 복장을 한 행위 예술가들이 행사장을 누비기도 했다.

'제3회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를 찾은 한 여자아이가 전문가 도움을 받아 목판 인쇄 체험 '책쾌는 내 손 안에'를 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지난 7일 개막한 '제3회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에 참여한 창작자·출판사·책방 관계자 등이 저마다 깃발을 든 채 풍남문 광장에서 행사장인 문화공판장 작당까지 행진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신기하다” “즐겁다”…남부시장도 ‘북적’

이와 함께 이태영 완판본 연구자와 안은주 완판본문화관 학예실장의 ‘완판본 살롱’, 전주 동네책방 책방지기 4인의 ‘책방 모범도시 전주, 7년 이상 살아남은 책쾌들’ 등 강연과 참가팀 대표 도서를 소개하는 미디어 전시 ‘독립출판, 가장 빛날 자유’, 전주책쾌의 비전을 시각화한 ‘책의 기수 책쾌가 온다’ 등 전시도 눈길을 끌었다. 목판 인쇄를 직접 체험해 보는 ‘책쾌는 내 손 안에’도 인기였다.

 
관람객이 행사장 벽에 붙인 메모지엔 “전주살이 15년 차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모든 것이 신기하다” “즐거운 시간, 즐거운 장소, 잘 놀다 갑니다” “책쾌만을 기다렸어요 여름 大명절” 등 호평이 많았다. 남부시장 내 청년몰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보람씨는 “전주책쾌가 열릴 때마다 시장 다른 가게들도 손님이 북적거린다”고 했다.

 

지난 8일 문화공판장 작당 내 문화교육장에서 시인이자 동네책방 '물결서사' 대표인 임주아 전주책쾌 총괄기획자가 '전주책쾌 어떻게 기획했나'란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지난 8일 문화공판장 작당 내 문화교육장에서 시인이자 동네책방 '물결서사' 대표인 임주아 전주책쾌 총괄기획자가 '전주책쾌 어떻게 기획했나'란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예산 1억5000만원→5000만원…“전주시 지원 인색”

출판계에선 “전주책쾌가 ‘도서 박람회는 고루하고 정적이다’는 편견을 뒤집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람회 성공의 일등 공신으론 1회부터 전주책쾌를 구상·기획한 시인이자 동네책방 ‘물결서사’ 대표인 임주아(37) 총괄기획자를 비롯해 이명규(에이커북스토어 대표)·유설(공간 리허설 대표) 기획자가 꼽힌다. 이들은 MZ세대가 독서를 자기표현과 소통 수단으로 활용하는 ‘텍스트힙(Text Hip)’ 트렌드에 맞춰 갓 쓴 비걸(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여성)이 등장하는 홍보 영상을 만들어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거나 전주책쾌를 상징하는 캐리커처·문구 등이 담긴 부채·타월·장바구니·티셔츠 같은 굿즈(기념품) 제작에 공을 들였다. “연간 1500만명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에 전주를 대표할 굿즈숍(기념품 가게)이 없어 그 빈자리를 한옥마을 입구에 있는 대기업 카카오프렌즈 굿즈숍이 대신하고 있다”는 아쉬움에서다. 임주아 총괄기획자는 “텍스트힙이라는 독서 문화를 전주책쾌를 통해 확장하고, 그 속에 전주다운 문화와 지역성을 짙게 드러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일각에선 “전주시가 ‘책의 도시’를 표방하면서 정작 이를 대표하는 문화·관광 콘텐트인 전주책쾌 지원엔 인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전주시 축제·행사 예산은 169억60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25억원가량 늘었지만, 전주책쾌 예산은 기존 1억5000만원에서 올해 5000만원으로 삭감됐다. 이에 기획자들이 민간 후원사를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