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 자라 수확을 앞둔 대마. 대마의 수정되지 않은 암꽃에는 칸나비디올(CBD) 성분이 풍부하다. 중앙포토
대마 규제의 예외로 취급되는 줄기 등을 가공한 물질이라도, 결과물이 대마의 주요 성분을 추출한 것과 같다면 이는 대마로 보고 규제해야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23일, 2020년 한 화장품 원료 수입사가 대마 성분에서 만들어진 추출물 중 ‘칸나비디올’을 수입하겠다고 했으나 ‘마약류에 해당해 불가’ 통지를 받자, 이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을 원고 패소 취지로 지난달 29일 파기환송했다고 밝혔다.
원고 측은 ‘이 물질은 마약류관리법에서 규제하는 대마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대마 규제 대상을 정한 마약류관리법 2조 4호는 ▶대마초와 그 수지 ▶이를 원료로 하여 제조된 모든 제품 ▶이와 동일한 화학적 합성품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 ▶위 3개에서 규정된 것 함유하는 혼합물질 또는 혼합제제로 정하지만, 예외적으로 ‘대마초의 종자‧뿌리 및 성숙한 줄기, 그 제품은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다. 주요 환각 성분은 수정하지 않은 암꽃에 가장 많고, 예외 부위는 섬유·식용 씨앗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고 측은 이를 근거로 ‘대마 예외 부위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볼 수도 있어 대마가 아니다’라고 했다.
1심과 2심에선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법원은 “환각성분 본체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인데 이 사건 수입품에선 이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규제의 필요성이 적어 예외로 해둔 부분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수입 불가 통지처분이 위법하다고 했다.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뉴스1
그러나 대법원은 “성분 자체로 ‘대마’인지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마에서 유래하는 여러 물질을 칸나비노이드라고 하는데, 대법원은 이 중 마약류관리법 시행령에서 합성물 중 대마와 성분이 같아 규제해야 할 대상으로 ‘칸나비놀(CBN),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칸나비디올(CBD)와 그 염 및 이성체 또는 이성체의 염’이라고 정해둔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마약류관리법은 대마 추출 성분 중 오남용으로 보건상 위해가 초래될 수 있는 주요성분을 CBN, THC, CBD로 보고 규제 대상으로 삼은 것이고, 천연물질만 규제 대상이 아니라 합성물도 규제 대상”이라며 “이 사건 물질(CBD)은 그 자체로 ‘대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대마 예외 부위에서 추출한 합성 대마 성분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대법원은 “오남용 위험이 적고 섬유‧종자 채취로 활용 가능성이 높아 일부 대마 예외 규정을 두긴 했지만, 여기에서 CBD 등 대마 주요성분을 추출한 것까지 규제에서 제외하려는 의도는 아니다”며 “대마 남용에 의한 보건상의 위해 방지라는 마약류관리법 입법목적에 반한다”고 했다. 원고 측은 ‘CBD의 의학적‧상업적 효용가치로 마약류에서 제외할 필요성이 있다’고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그건 입법 영역에서 다룰 문제일 뿐 현행 마약류관리법에선 위법”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