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자료요구는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여야 바뀌었다고 인사청문회 자료 제출 기준이 달라지면 안 됩니다.”(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김성룡 기자
자료제출을 둘러싼 공방은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반복되는 풍경이다. 2000년 6월 헌정사상 처음 실시된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후보자의 자료 제출 비협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야당이던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부실한 자료 제출 행위와 자료 제출 거부행위에 대해 고발을 하는 등 응분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따졌다.
반복되는 갈등은 인사청문회법과 개별 법률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국회 증언감정법과 인사청문회법은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권의 근거가 되지만, 개인정보보호법과 금융실명법 등은 사생활 보호와 비밀 보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개인정보호보법은 민감정보와 주민등록번호 등을 수집·이용하거나 제 3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금융실명법은 “다른 법률과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이 법을 따른다”며 “명의인의 동의 없이는 금융거래 내용과 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할 수 없다”고 명시돼있다. 이 때문에 후보자가 개인정보 이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인사청문특위의 요청에도 금융권과 정부 기관에서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
창과 방패처럼 매번 충돌하고 있지만, 국회입법조사처도 국회 증언감정법·인사청문회법과 개별 법률 사이의 우선권에 대해선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2022년 12월에 발간한 ‘국회 자료 제출 요구의 주요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개별법 규정안만을 사유로 국회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국회증언감정법에 반할 소지가 있다”면서도 “(자료제출 요구가)헌법상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의 침해 금지와 사생활 침해 등의 한계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도 자료제출 요구권을 강화하기 위해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반복되는 여야의 대립 속에서 임기 만료 폐기됐다. 야당이 개정안을 발의하면, 여당은 비협조로 일관한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면 여야가 공수를 교대하고,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에 대한 입장도 바꿨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에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권 강화에 앞장섰지만, 여당이 된 뒤로는 개인 신상·도덕성 검증과 정책·역량을 구분하는 방식의 인사청문회 개정을 추진하고 나섰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지난 19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국정 운영 역량을 검증하는 자리지, 청문 대상자의 인신을 공격하고 흠집 내서 정치적 반사이익을 취하는 자리가 아니다”며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빠르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여야가 서로 ‘내로남불’이라고 비판만 해왔지, 그때그때 유불리 때문에 법을 바꾸는 노력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며 “궁극적으로는 사생활·도덕성과 정책 역량을 분리해서 검증하면서 내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