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벨트 집값 역대 최대 올랐다..李정부 '반文교사' 딜레마

서울 경부고속도로 인근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서울 경부고속도로 인근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서울 아파트값이 거침없이 치솟고 있다. 아직은 집값 상승 불길이 강남권과 한강벨트를 중심으로 타오르고 있지만 조속히 ‘방화선’을 구축하지 않으면 서울 외곽과 수도권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주 대비 0.43% 올랐다. 6년 9개월 만에 최대치로 오른 지난주(0.36%)보다 상승 폭이 더 커졌다. 집값이 폭등했던 2018년 9월 둘째 주(0.45%)에 근접한 수치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강남 3구를 비롯해 한강벨트 지역은 ‘비이성적 과열’ 현상이 뚜렷하다. 성동구는 전주 대비 0.99%, 마포구는 0.98%, 광진구는 0.59% 치솟으며 2013년 1월 통계 집계 이후 주간 기준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강남구(0.84%)와 서초구(0.77%)도 오름폭을 더 키웠다. 지난주 소폭 하락하며 주춤했던 송파구는 0.88% 상승하며 불길이 재점화 되는 양상이다. 용산구(0.74%), 강동구(0.74%), 동작구(0.53%), 영등포구(0.48%) 등지도 크게 올랐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강남권과 한강벨트 지역 대부분이 2018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 등 서울 외곽 지역은 전주 대비 0.06~0.16%가량 올랐는데, 과열 양상까지는 아니지만 한 달 새 오름폭이 서서히 커지고 있다. 

서울 고가 아파트와 재건축 단지에선 '신고가'도 속출하고 있다.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실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으로 강남구에서 실거래 신고된 아파트(2015건) 중 525건은 '역대 최고가(신고가)'였다. 4가구 중 1가구꼴이다. 같은 기간 신고가 건수만 보면 강북구(17건)의 약 31배에 달한다. 서초구(435건)와 양천구(263건)· 마포구(260건), 송파구(237건), 성동구(230건) 등지도 신고가 거래가 많았다. 반면 노원구는 실거래 신고(2320건) 대비 신고가 비중이 1.8%에 불과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강남권과 한강벨트 집값이 급등하고 신고가가 속출하는 것은 이른바 ‘매물 잠김’ 현상이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똘똘한 한 채’ 수요는 많은데 집주인들이 집값 상승 기대감에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한두 건 거래만으로도 ‘신고가 시세’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서울 집값 상승 기대가 커지면서 실수요자들의 추격 매수 조짐도 감지된다. ‘지금 아니면 늦다’는 불안 심리가 확산하면서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집값이 오른다’는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 20일이 지났지만 일단 '신중 모드'다. "억지로 누르면 더 튀어 오른다" "세제로 집값 안 잡는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인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 역시 취임 후 공식적으로 부동산 문제를 거론한 바 없다. 주택 정책 사령탑인 국토교통부 장·차관 인선도 늦어지고 있다. 주요 부처 장관 인선이 어느 정도 이뤄졌고, 26일 국방·복지·환경·고용부 차관 인선이 발표됐지만 국토부는 빠졌다. '새 정부에서 부동산은 뒷전'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유지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온갖 규제를 망라하며 26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집값 폭등을 막지 못한 문재인 정부 때의 학습 효과 때문에 '단기 액션(대책)'을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춘석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장이 25일 "아파트값이 오른다고 단기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한 배경에도 이런 딜레마가 깔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국회에서 2025년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국회에서 2025년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하지만 시장은 정부 판단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현재 서울 부동산 시장은 '규제는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안도 랠리'가 나타나는 중"이라며 "이춘석 분과장의 발언 역시 정부가 나서 집값 잡지 않는다는 신호로 읽힐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원한 부동산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 학습효과를 우려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정부 무대책이 시장 과열을 방치했다는 또 다른 학습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정책 실기'는 불붙은 부동산 시장에 붓는 기름이 될 수 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미 과천·분당·광명 등 경기 주요 지역과 서울 중심권 지역도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하면 불길이 서울 외곽과 소위 수용성(수원·용인·화성) 등 경기 남부까지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채 대표는 "담보인정비율(LTV)이 지나치게 높은 신생아·디딤돌 특례 대출 등을 손보는 등 강력한 수요 억제책을 내놔야 한다"며 "지금은 이미 가속이 붙은 차에 되려 정부가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첫 시험대는 7월 시행되는 3단계 스트레스 DSR 직후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집값 상승 여파로 금리 인하가 지연되고 정부 규제가 더해지면 서울 부동산 시장이 조정장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컨설턴트는 “대출 총량 규제가 강화되고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 지역이 확대 지정된다면 강남권과 마용성 등은 갭투자와 포모(fear of missing out) 수요가 줄면서 시장이 주춤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