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앉는 것도 난관"…장애 여성 산부인과 이용률 단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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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율 기자 사진 전율 기자
지난해 세계 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문애준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장애여성지원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세계 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문애준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장애여성지원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중학교 2학년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박모(43)씨는 지난 4월 생리 주기가 불규칙한 아이 검진을 받기 위해 산부인과에 데리고 갔다가 진료를 받지 못한 채 나왔다.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아이가 발버둥을 쳤기 때문이다. 박씨는 “내과나 이비인후과랑 다르게, 산부인과는 초음파 검사 등이 필요한데 진료실에 앉히는 것부터 난관”이라며 “병원 직원들은 발달장애인을 대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혼자 애를 쓰다 나왔다”고 말했다.

 
장애 여성과 보호자들이 이중의 장벽 앞에 의료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특히 산부인과 이용은 기본적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토로한다. 이동이 어려울뿐 데다 장애인을 위한 진료 시스템을 갖춘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인력과 산부인과에 함께 가는 것도 당사자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시각장애인 김신지(39)씨는 “병원에 갈 땐 활동보조인력을 반드시 동행해야 하는데, 일상적인 생활을 함께해야 하는 활동보조인과 산부인과 진료처럼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건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라며 “병원 내 진료를 도와줄 수 있는 전문의료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 장비가 비장애 여성의 몸에 맞춰져 있는 점도 문제라고 이들은 호소한다. 대부분의 자궁경부암 검사 장비는 높낮이 조절이 되지 않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여성이 사용하기 어렵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40대, 50대부터는 정기적으로 자궁경부암 검사를 해야 하는데 의료 장비가 없다 보니 검진을 받지 않고 아파도 참고 지내는 상담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장애 여성이 산부인과를 이용한 비율은 평균 14.8%에 불과했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에는 12.5%로, 비장애 여성의 경험률(24.6%)의 절반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부터 장애 유형에 따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장애친화 산부인과 지정을 시작했으나 현재 전국 10개에 불과하다. 이중 절반인 5개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외래 진료를 받으려면 1차 병원에서 상급종합병원에서 요양급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요양급여의뢰서’를 먼저 발급받아야 한다. 일반 산부인과 방문이 어려운 장애 여성에게 이러한 절차는 장애 친화 산부인과 이용도 어렵게 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증 지체 장애 당사자인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표 문애준(56)씨는 “장애친화 산부인과 확대가 필요하다”며 “특히 지역에는 의료 장비가 갖춰진 병원을 찾기 어려운데, 이동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문씨는 “여성 장애인이 생애 주기별 겪는 고충이 있는데, 기존 지원 제도가 이를 다 커버할 수 없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일 서 의원은 뇌병변장애, 지체장애 등 이동이 어려운 장애여성은 요양급여 의뢰서 없이도 상급종합병원에서 지정된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건강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 의원은 “장애 여성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도입된 제도임에도 정작 접근성이 부족해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 장애 여성의 기본 권리가 실제로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애 대구대 유아특수교육과 명예교수는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현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장애친화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모든 산부인과에서 장애 여성들이 쉽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장비 보급과 의료진 교육 등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