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당초 15억원 이상 대출을 받는 게 가능했던 서초구와 강남구는 대출 한도가 큰 폭으로 줄어든다. 30억원대(전용 84㎡ 기준)인 시세를 고려하면 최소 25억∼26억원의 이상 현금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의미다. 평균 시세가 각각 14억9000만원, 16억4000만원인 마포구와 성동구 역시 LTV 70%를 기준으로 대출 가능액이 종전보다 4억∼5억원가량 줄어든다.
서울에서 6억원 한도 규정을 넘지 않고 LTV 70%까지 대출이 가능한 곳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와 중랑구 등 7개 구 정도다. 이들 지역은 아파트 평균 시세가 6억∼8억원대로, LTV 70%를 적용해도 거의 6억원을 넘지 않는다.
시장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매수를 저울질하던 수요마저 사라졌다”며 “시장 움직임과 가격 동향을 관망하는 수요가 늘면서 한동안 거래 절벽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시 분당구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 역시 “전화가 많이 와 일요일에도 출근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는 문의가 대부분”이라며 “일단 좀 지켜보자는 쪽으로 돌아선 것 같다”고 전했다.
사실상 수요가 묶이면서 가팔랐던 집값 상승세는 어느 정도 진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려도 있다. 당장 예측 가능 가능한 건 풍선 효과다. 부동산R114 윤지해 리서치랩장은 “단기 수요 위축이 예상되지만, 고가 주택 지역에서 중저가 지역으로 대체 물건을 찾으려는 수요가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6억원 이하 대출로도 소화할 수 있는 중소형 아파트나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지역이 유력 후보다. 지역별로는 서울 노도강과 금관구 지역, 일부 1기 신도시, 과천·성남·광명·하남 등을 제외한 경기권이 꼽힌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 생애 최초, 신혼부부 등 정책자금대출의 한도를 축소하는 방안도 담았다. 자금이 부족한 20~30대가 외곽으로 이탈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강남 집값을 잡으려다 서울 나머지 지역과 수도권 아파트 가격까지 오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대책을 둘러싼 다른 쟁점은 충분히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고소득자 또한 대출 길이 막혔다는 점이다. 연 소득이 2억원일 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를 적용하면 대략 14억원까지 빌릴 수 있지만 이젠 똑같이 6억만 가능하다. 전문직 직장인 강모 씨는 “적당한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대출 제한이 나와 당혹스럽다”며 “강남이든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이든 내가 선택하고, 빚 갚으며 살겠다는데 그걸 왜 못하게 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단기 대부업체 자금을 활용한 편법·불법 대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서초구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신규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어 불법 사업자 대출을 받은 뒤 주택 매수 자금으로 이용하는 등 우회 통로를 활용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엔 주택 구매 시 6개월 내 전입,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규정이 포함됐다. 사실상 갭투자(전세 끼고 매입)를 전방위적으로 차단하는 초강력 수요 억제책이다. 갭투자가 줄면 전세 매물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급 부족에 따른 전세 가격 상승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전셋값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전세 가격은 2023년 6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19개월 연속 상승했다. 올해 1월엔 잠깐 보합세를 보였다가 5월까지 다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달 들어서도 0.09%(6월 넷째 주 기준) 오르며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여기에 공급 부족이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수도권 입주 물량은 올해 14만 가구에서 내년 10만 가구로 급감하고, 서울 입주 물량은 올해 약 4만6700가구에서 약 2만4400가구로 절반가량 줄어든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아파트 전세 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에 대비해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