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 20주년 맞은 유식대장 "모든 이용자는 옳습니다"

  20년 전 서울 아현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2명이 시작한 '김유식의 디시인사이드'. 디지털 카메라에 관심 있는 네티즌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던 이 공간은 20년 후 한국 인터넷 문화를 창조하는 네티즌들의 공간으로 성장했습니다. 

  디시인사이드의 성장에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유식대장입니다. 정식 호칭은 김유식 대표지만, 유식대장이 더 친숙하고 정감 어립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른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과 다르게 이용자, 달리 말하면 소비자들의 '샌드백'을 자처하며 각종 장난과 패러디 소스로 사용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난 20년 간 디시인사이드를 둘러싼 수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음에도 무너지지도, 흔들리지도 않으며 디시인사이드를 이끌어 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디시인사이드는 10월 6일, 개설 2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해 유식대장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동안 이용자들이 알고 있던 수백만 디시인 중 한 명인 '유식대장'이 아닌 디시인사이드라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로서의 김유식 대표를 만나게 해드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디시 최장기 이용자 모습을 숨길 수는 없었네요.  

- 디시인사이드 20주년을 맞아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글쎄요. 초기부터 "쥐구멍에 볕이 들려면 쥐가 오래 살면 된다."는 주의로 가늘고 길게 가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우와아~ 이십 년이나 됐네?" 하는 거창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그래도 "20년 동안 트래픽이 빠지지 않고 버텨왔구나!" 하는 뿌듯한(?) 기분은 있습니다.



- 디시인사이드를 처음 오픈했을 때 어떤 마음가짐과 각오, 목표로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그때 목표 중 이룬 것이 있다면요?

  목표라 한다면 노트북과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한 IT, 전자기기 커뮤니티로 크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는데 종합 커뮤니티로 발전하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 디시인사이드는 한국 대중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문화를 창조해 냈는데, 이런 것들 중 가장 자랑스러운 아웃풋이 있다면요?

  반말? 악플? 욕설? ㅎㅎ 물론 아니구요. 온라인에서 사회 담론의 장으로서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 디시인사이드를 운영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면요?

  엽기갤, 막장갤, 야갤, 주갤 돌면서 재미있는 게시물 읽는 것이 즐거움이라면 못된 M&A 사기꾼한테 잘못 걸려 회사에서 관리비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겼던 것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네요. 


- 디시인사이드 운영의 제1원칙과 그 이유를 알려주신다면요?

  PC통신 때부터 여러 동호회의 회원으로 있었을 때부터 갖고 있던 생각인데요. “운영자는 커뮤니티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거창하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들먹이지 않아도 커뮤니티에서도 운영자 개입이 적으면 적을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니까요. 기본적인 관리는 해야겠지만 자꾸 운영자가 개입하면 아무래도 발전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울타리를 쳐놓고 양을 방목하는 것이 아니라 양을 따라다니면서 울타리를 치는 것이죠.

- 디시인사이드는 최초 설립 취지와 현재의 목적이 매우 다른 사이트가 되었는데, 운영의 전환점이 있었나요? 어떤 사건이었나요?

  "콘텐츠를 통한 커뮤니티와 전자상거래를 운영한다."는 것이 애초의 취지였는데 노트북이나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한 콘텐츠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것은 이미 종합 커뮤니티 사이트로 바뀌었기 때문에 목적이 매우 다르게 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요. 전자상거래는 접은 지 오래됐네요. 이 부분은 광고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디시인사이드는 이용자들이 볼 때는 커뮤니티 사이트지만 회계 쪽에서 볼 때는 전적으로 광고회사입니다. 노트북과 카메라의 공동구매로는 이익이 많지 않아서 2002년 가을부터 여러 IT 기기 회사들의 광고를 수주하게 되었는데 전환점을 이야기한다면 이때가 되겠네요. 그전에는 IT 기기 리뷰를 쓰면서 광고를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어찌 보면 현실에 굴복한 모양새가 되었네요. ㅠㅠ


- 최근 가장 즐겨가는 갤러리는 어디인가요? 그 갤러리에 자주 가는 이유는 뭘까요? 

 최근에는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아주 오래오래 있습니다. 개념글을 꼬박꼬박 읽고 있구요. 아무래도 디시의 수도급 갤러리니까요. 최신 트렌드도 훨씬 빠르게 전파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JTBC에서 주갤이 몇 번 언급된 후, 주갤의 성격이 바뀐 뒤로는 자주는 가지 않고 있네요. 개인적으로는 매우 안타깝습니다. 지금의 주갤은 정치성향의 갤러리로 바뀌었는데 이용자들의 니드가 있다면 현재의 주갤 명칭을 바꾸고 실전투자 갤러리분들이 다시 주갤로 오시면 어떨까? 갤러리 명칭을 다시 돌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 보통 하루에 몇 시간 정도 갤러리 눈팅을 하시나요?

  기본적으로 야붕이들만큼은 못하겠지만 ㅋㅋ 적을 때는 서너 시간, 많을 때는 열 시간 정도 도는 것 같습니다.


- 최근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이용자들의 불만사항이 있다면요? 해당 불만은 어떻게 해결하실 것인지요?

  개념글에 대한 주작, 그리고 도배일 것 같은데요. 도배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이 줄이고 있습니다. 주작에 대해서는 뭐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네요. 관리 인원을 더 투입하면 좋겠습니다만....흑흑~ 비용이 더 드는 일이니까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최근에는 서버를 많이 확충해서 사이트 속도에 대한 불만은 줄었습니다만 간간이 디도스 공격을 맞고 있는 것도 골칫거리입니다.

- 디시인사이드를 운영하면서 가장 잘 했던 결정은, 가장 후회했던 결정은 무엇인가요?

  잘했던 것이기도 하고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마이너 갤러리였구요. 지금은 디시 전체 트래픽의 40% 가까이 육박하는 인기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가장 후회했던 결정이야 뭐 2006년에 320억 원을 들여 IC코퍼레이션을 인수했던 것이겠지요. 흑흑~ 하지만 그때 당시로써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네요. 결과적으로는 연속 두 번 사기 맞은 일이 되었습니다. 엉엉엉~


- 갤러리 이용자들과 직접 소통하고 계시는데, 기억에 남는 이용자와의 대화가 있었다면요?

  특정 이용자가 아니구요. 예전 디시에서 자살한 이용자가 있었는데 그때 동아일보가 기사를 냈는데 제목이 "악플러, 고소 당하자 자살"이라고 했어요. 그 기사를 본 네티즌들이 찾아와 수천 건의 항의 게시물을 올려서 그거에 대응하느라고 3일을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가 살인마 김유식이 운영하는 사이트인가요?" 하는 식이었죠. ㅠㅠ 저희가 그 이용자를 고소한 것은 2월이고 이용자가 자살한 것은 8월이구요. 그리고 고소가 아닌 다른 이유로 자살을 한 것이지만 이미 고인이기 때문에 굳이 그 이유를 밝히지 않고 대응하려니 매우 힘들더라구요.


- 온라인을 시끄럽게 하는 몇몇 사건이 있을 때 이를 패러디(류여해 라이언 인형, 티파니 종이컵 인증샷)하시기도 하는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관종이라서? ㅋㅋ 그건 아니구요. 운영자가 아닌 이용자 입장에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가끔하는데 요즘은 제가 운영자인 것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이제는 해도 잘 먹히지(?) 않을 것 같네요.


- 앞으로 도입하고 싶은 서비스가 있다면요?

  디시 내에서 동영상 서비스를 곧 선보일 거구요. 거의 95% 정도 개발이 됐습니다. 그리고 마이너 갤러리보다 더 단순한 미니 갤러리와 번역 기능을 넣은 다국어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디시인사이드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것들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는지요?

  늘어나나요? 하나 둘씩 사라지는 거 같은데요? ㅎㅎ 비단 커뮤니티 사이트뿐만 아니라 포털 사이트, 각종 SNS나 게임 등 인터넷에서 이용자의 사용시간을 잡아먹는 모든 서비스에 대해서 항상 적성국(?) 보듯이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디시와 상생효과도 내지만 한편으로는 디시의 방문 횟수와 체류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 탱구에서 시연이로 갈아탔는데, 시연이가 가수 활동을 중단한 지금 열중하고 있는 연예인이 있다면요?

  버스터즈의 채연입니다. 이제 중3이라서 앞으로의 가능성이 많아 보이는 친구입니다. 노래 하나만 제대로 히트하면 좋겠는데요. 아, 퍼플백의 예림도요.

- 네티즌들이 가지고 있는 디시에 대한 선입견 중 바로 잡고 싶은 오해가 있다면요?

 중국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중국 관련 게시물에 대해서 민감하게 대응한다는 게시물을 가끔 보는데요. 관리지침은 한국에서 내리기 때문에 그런 일은 결코 없습니다.


- 디시에 입사하고 싶어하는 이용자들이 많이 있는데, 디시에 입사하기 위해서 꼭 갖추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요?

 어느 한 분야더라도 덕후형 인재였으면 좋겠습니다. 4호 전차의 페인트만 보고도 1943년 독일 어느 공장에서 생산됐는지 맞출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요. 3초만 듣고도 어느 애니메이션의 어떤 부분인지 맞출 수 있거나요. 디시는 B급 문화의 커뮤니티 사이트고, 3급수에 있으면서 2급수를 지향하는 사이트입니다. 디시에는 밤하늘의 별 만큼이나 각종 분야의 고수들이 즐비한 곳인데 이들을 이해하고 같이 디시질을 하려면 아무래도 직원들도 그만큼의 덕질 역량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디시인사이드 대표로서 지금의 디시인사이드는 어떤 상황에 있는가요? 순항 중인가요? 아니면 위기인가요?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면서 하루하루 보내는 중입니다. 올해까지도 트래픽은 계속 늘어나는 중이고 영업실적도 나쁘지 않습니다. 좋게 말하면 순항이지만 나쁘게 본다면 지금이 제일 피크 상태일 수도 있는 거죠. 지난 20년 간 한 번도 트래픽이 줄어든 적이 없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이트가 급격히 커지면 단기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그만큼 빨리 식을 거라서요. 원하는 바는 아닙니다. 2004년 싸이월드를 보면서 부러워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죠. 가능한 한 가늘어도 길게 가고 싶습니다.


- 마음에 항상 담아두고 있는 말, 격언이 있다면요?

  모든 이용자는 옳다.


- 디시인사이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일일 등록 게시물 200만 개 정도 되는, 현재의 두 배 정도의 규모를 갖는 사이트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 인간 김유식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이고 저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거창한 목표는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10년 정도 디시인사이드 운영을 더 하고 은퇴한 뒤, 본격 갬블러로 읔 이건 아니고 여행과 글을 쓰고 싶습니다.


- 어떻게, 디시 30주년 인터뷰도 가능하겠습니까?

  구치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해보고 싶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합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디시인사이드 역시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사무실도 여러 번 이전하고, 거쳐간 직원들도 수십, 수백 명이 됩니다. '면식수행'도, '싱하횽'도 모르던 신입직원들이 이제는 쉬는 시간에 야민정음이 완벽히 패치되어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운영자들은 사용자들의 행동에 최대한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유식대장의 철학입니다. 디시인사이드는 누누이 이야기드립니다. 디시는 이용자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요. 지난 20년 간 디시를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디시인사이드는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나날들을 지난 20년과 같이 이용자들이 만들어주는 다양한 문화를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해 나가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사랑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