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해소를 위한 협상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시작부터 미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중국이 지난 7월 40%로 높인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낮추겠다고 11일(현지시간) 제안했다. 류허 중국 부총리와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간 이뤄진 전화 통화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승기를 잡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트위터에 “중국과 매우 생산적인 대화가 진행 중”이라면서 “중요한 발표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뒤 대중 강경파인 라이트하이저 대표를 전면에 내세웠다. 협상 결과를 미국에 유리하게 끌고 가겠단 명확한 신호였다.
협상이 순조롭게 출발한 데는 중국이 기존 입장을 크게 누그러뜨린 영향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이징이 워싱턴과의 긴장 완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팽팽하게 당긴 끈을 먼저 놓고 한발 뒤로 물러나 화해를 시도한 당사자가 중국이라는 의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은 미국이 점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데 놀라면서도 지속해서 무역 협상 타결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중국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장에서 이미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미국산 에너지와 농산물을 대량 수입하기로 한 데다 트럼프 최대 관심사인 자동차 관세 문제도 미국 요구를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그동안 논의를 꺼려 온 민감 사안을 무더기로 협상 테이블에 올리기로 약속했다. 강제 기술이전, 지식재산권 보호, 사이버 침입·절도, 비관세장벽 등 해결이 쉽지 않은 사안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 자동차 관세 철회 소식 직후 올린 트윗. [트위터 캡처]](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2/12/f9cf885a-351b-4d56-9c72-7d17a96dfc55.jpg)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 자동차 관세 철회 소식 직후 올린 트윗. [트위터 캡처]
정상회담 후 본협상 첫 단추인 자동차 관세 협상은 일단 미국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중국은 지난 7월 다른 수입차 관세는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면서 미국산만 40%로 올렸다. 미국이 먼저 시작한 관세전쟁에 대한 보복 성격이었다. 중국이 다시 미국산 차 관세를 15%로 낮추면 시장 차별이 없어진다. 게다가 이는 미국이 중국산 자동차에 매기는 관세율(27.5%)보다 낮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대중 자동차 수출 규모는 95억 달러(약 10조7000억원)로 연간 26만6000대에 달한다. 2020년 재선을 앞둔 트럼프는 ‘러스트벨트’로 불리는 미 북동부 공장 지역 지지층을 지키기 위해 자동차 관세 철폐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미국산 대두(콩)를 비롯한 농산물 수입도 대표적으로 중국이 양보를 결정한 사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이달 말까지 국가 비축물로 지정될 미국산 대두의 첫 구매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국무원과 내각 등 중국 정부가 구체적 물량, 관세 적용 여부 등 세부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
올 하반기 들어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량은 지난해의 5% 수준으로 떨어졌다. 10월에는 2004년 이래 1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이 대두 수입을 재개하면 미국 중서부 ‘팜 벨트’ 농장지대에 혜택이 돌아간다.
무역전쟁에 지친 중국 지도부의 변화는 시 주석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중국제조 2025’ 전략 재검토를 결정한 대목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시 주석은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면서 인공지능(AI), 차세대 정보기술(IT), 로봇공학, 신소재 등 10대 전략산업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첨단 제조업을 육성해 글로벌 최강국 지위에 오르겠다는 의지였다.
이 때문에 ‘중국제조 2025’ 전략은 미·중 간 주도권 싸움의 숨은 핵심이 됐다. 미국은 7월 무역전쟁을 시작하면서 중국이 외국 기업에서 부당하게 기술을 빼내고 지적 재산권을 탈취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연 수백억~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입고 있다는 보고서도 냈다. WSJ은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관료들이 시 주석의 첨단 제조업 육성 정책인 ‘중국제조 2025’에 변화를 주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장기 국가발전 계획 수정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두번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이 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업무 만찬을 가졌다. [AP=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2/12/c8377928-0ce2-48cd-baa8-7b50a8e80d91.jpg)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두번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이 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업무 만찬을 가졌다. [AP=연합뉴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중국의 패배로 끝날 것이라고 속단하긴 이르다. 아직 협상 초기라 남은 변수가 많다. 자동차 관세 인하의 경우 중국이 언제부터 단행할지 명시하지 않았다. 일단 인하안을 제시해 미국을 안심시킨 뒤 나머지 협상 진행 경과에 따라 발효 시점을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 WSJ은 “워싱턴에서 가능한 빠른 개선을 종용하고 있지만, 변경 시점이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농산물 수입 재개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수입 재개 물량이 미국 농가가 피해를 회복할 만큼인지는 미지수다. 7월부터 미국산 대두에 부과 중인 25% 관세 철회 여부도 중요하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현행 관세를 물린 상태에서 수입을 재개한 뒤, 수입 업자에게 관세를 되돌려 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정부는 공식 성명에서 “이번 대화는 본격적인 협상을 위한 일정표와 로드맵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다”고만 밝혔다. 류 부총리는 내달 워싱턴 방문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협상은 내년 3월 1일까지 진행된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