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음식만행(飮食萬行) - 아이슬란드 미식 여행
광주광역시의 한 방송국 피디에게 내가 처음 한 말이었다. 그는 유럽 한 나라에서 홍어를 삭혀 먹는다고, 같이 취재를 가자고 제안했다. 홍어를 삭힌다고?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한 여행사 직원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어느 단체를 인솔해 유럽의 한 공항에 도착했다. 세관에서 크게 홍역을 치렀다. 짐에 삭힌 홍어가 있었다. 마약견이 출동하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홍어를 먹는다. 20여 년 전 직접 목격했다. 그러나 ‘삭힌’ 홍어가 아니다. 날개만 버터에 구워 요리할 뿐이다. 생홍어와 삭힌 홍어는 차원이 다르다. 홍어는 삭힘으로써 전혀 다른 생선이 된다. 어떤 나라에서는 엄청난 마니아를 거느린 고급 음식이 되고, 그 밖의 나라에서는 상상 밖의 음식이다. 그 어떤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 현장을 목도하기 전까지.
홍어 날개만 먹고 애·코·등뼈는 버려
아이슬란드는 영국 북쪽에 있다. 이름과 달리 그렇게 춥지 않다. 한겨울에도 영하 5도 이하로 내려가는 적이 별로 없다. 대신 한여름에 파카를 입을 만큼 서늘하다. 내가 수도 레이캬비크에 머물렀던 8월에도 그랬다. 아이슬란드는 몇 가지 독자적인 문화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게 독특한 혈통 문화다. ‘누구누구의 딸(도티르)’ ‘누구누구의 아들(손)’로 끝나는 말을 성으로 쓴다. 그래서 남매간에 성(姓)이 다르다. 당연히 남자 축구대표팀은 모두 ‘OO손’이었다. 아, 한국과 비슷한 게 하나 있다. IMF 사태를 겪었다는 것. 물론 현재는 한국처럼 경제 복구가 다 이루어졌다. 현재 인구 33만여 명. 1인당 국민소득은 7만 달러 이상으로 세계 4위다.
그들은, 이것을 구워서 먹는다. 물론 나는 날로 먹었다. 준비해간 초장을 곁들였다. 섬유질이 국숫발처럼 가늘게 찢어진다. 그놈을 뼈째 수직으로 썰어서 씹었다. 음, 내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동행한 박준우 셰프는 홍어가 처음이란다. 그는 “맛있다고는 못하겠다”며 묘한 표정으로 우물거렸다. 처음부터 삭힌 홍어를 맛있다고 하기는 어렵지, 그렇게 생각했다.
남부의 항구마을 소르라욱스헙으로 차를 몰았다. 홍어 산지다. 두툼한 작업복을 입은 어부 토르비가 마침 홍어를 잔뜩 구해놨다. 8㎏이 넘는 엄청난 크기다. 한국 같으면 최상품이다. 물가가 비싼 나라인데도, 한국 홍어의 20~30% 정도밖에 안 한다. 암수의 가격 구별은 없다. 이 와중에도 ‘암컷을 수입해 가면 한국에서 좋아하겠는걸’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홍어 암컷은 수컷보다 훨씬 비싸다. 더구나 날개만 잘라서 먹고, 다른 부위는 버린다. 홍어 애, 코, 등뼈 같은 맛있는 부위가 사라져버린다. 아깝다. 문화 차이다. 역시 홍어를 제대로 알뜰하게 먹는 나라는 한국뿐인 듯하다. 홍어회도 먹었다. 감칠맛이 흑산도 치에는 못 미친다. 종은 같은 참홍어인데, 먹이 활동 등으로 조금은 다른 맛을 지녔다.
삭힌 상어, 아이슬란드 국민 반찬
상어 특유의 삭힌 맛을 즐기는 건 우리 경상도 지역이다. ‘돔베’라고 부르는 경북 포항·안동 등이다. 우리처럼 아이슬란드인은 하우카르를 먹는다. 18개월에서 4년까지 장기 숙성한다. 한국보다 윗길이다. 흥미롭게도 아이슬란드인은 우리 전라도와 경상도의 대표적인 삭힌 생선을 두루 먹는다. 이곳의 음식문화는 소박하고 자연적이다. 그런 나라에서 고도의 요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생선의 삭힘을 즐긴다는 건 의외의 발견이었다. 삭힘의 대마왕(?)인 홍어는 일 년에 단 하루만 먹고, 삭힌 상어 하우카르는 일상식이다.
방송국에서 의도한 구성이 있었다. 아이슬란드인에게 “음식으로 사람을 차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코너였다. 한국에서 삭힌 홍어를 지역 차별의 끔찍한 대명사로 쓰고 있는 현실에 대한 다른 시선을 얻고자 했던 것 같다. 그들은 질문의 요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음식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구분하죠? 그게 뭐예요? 그들의 반문이었다. 당연한 대답이었다.
오히려 그 반문이 좋은 답이 되었다. 물론 내 가슴 한편은 더 무거워졌다. 우리 포털의 댓글에서 홍어라는 낱말은 여전히 몰이해와 차별의 언어로 날아다닌다. 한 번도 그 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자들의 언어로 말이다. 먹는 건 사람의 기억을 구성한다. 나아가 그 사람의 인생도 만들어간다. 부디 홍어 한 점으로 우리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를.
글 잘 쓰는 요리사. ‘로칸다 몽로’ ‘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음식 관련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본인은 ‘한국 식재료로 서양요리 만드는 붐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