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유물인줄 알았는데…대학가 '귀향버스'가 돌아왔다

24일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에 귀향 버스 두 대가 서 있다. 서지원 기자

24일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에 귀향 버스 두 대가 서 있다. 서지원 기자



“어제까지 계절학기 수업 듣느라 힘들었는데, 명절엔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푹 쉬고 싶어요.”

24일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에서 만난 2학년 김다희(21)씨는 여행용 가방을 버스에 실으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전북 전주에 본가가 있다는 건축학과 2학년 송재용(20)씨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면서 겨울방학에도 공모전을 준비하느라 두 세 달 만에 본가로 간다”고 했다. 이날 오후 아주대에선 ‘대전·전주·광주행’ ‘대구·창원·부산행’ 45인승 버스가 각각 출발했다. 이들이 탄 버스는 명절을 맞아 아주대 학생지원팀 및 총학생회가 마련한 이른바 ‘귀향 버스’다. 

2001년 연세대·서강대 등 서울 서부 지역 9개 대학에 재학 중인 2000여 명의 지방연고 학생을 위한 귀향버스가 연세대 대운동장에서 출발을 앞두고 있다. 김성룡 기자

2001년 연세대·서강대 등 서울 서부 지역 9개 대학에 재학 중인 2000여 명의 지방연고 학생을 위한 귀향버스가 연세대 대운동장에서 출발을 앞두고 있다. 김성룡 기자

1990년대 대학가에서 자리 잡은 귀향 버스가 이번 설에도 명맥을 잇고 있다.  

아주대는 올해 학교 예산으로 귀향 버스를 편성해 학생 부담금을 받지 않았다. 대학 본부 학생지원팀 관계자는 “집이 멀면 (월세·기숙사비 등) 별도 비용이 많이 드니까 교통비라도 지원하자는 취지”라며 “학생 수요와 예산 상황에 따라 추후 지원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 또한 “기차 티켓팅을 안 해도 돼 좋다” “번잡한 터미널에 안 가도 된다”며 호응했다.

서울대에선 오는 27일 총 120여명이 3개 노선을 타고 각각 고향으로 향할 예정이다. 구미·대구 40명, 창원·부산 43명, 대전·전주·광주·목포 43명 등이다. 총학생회는 학생 수요를 반영한 노선을 편성하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임준혁 서울대 총학생회 교통국장은 “학생 편의를 보장하면서도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올해 ‘교통국’을 만들어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의 편리하고 안전한 이동을 돕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90년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이 귀향 인파로 붐비는 모습. 중앙포토

1990년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이 귀향 인파로 붐비는 모습. 중앙포토

 
귀향 버스는 1990년대 서울 지역 대학에서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복지 제공 명분으로 운영됐다. 총학생회나 학생복지위원회가 버스를 전세 내서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표를 파는 공동 구매 방식이다. 도시락과 간식을 제공하거나 재학생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단 점에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가까운 지역에 있는 대학들이 함께 귀향 버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서울 연세대·서강대·이화여대 등 서울 서부 지역 총학생회연합은 1993년 버스 103대를 빌려 4500여명이 귀향길에 오르도록 했다.

하지만 KTX 등 새로운 교통 편이 생기고, 해외여행이나 취업난 등의 이유로 ‘귀포자(귀경 포기자)’ 대학생이 늘어나면서 귀향 버스 이용객은 전반적으로 줄어들었다. 이화여대의 경우 지난 2015년 ‘한가위 귀향단’으로 부르던 귀향 버스 운행을 중단하면서 ‘이용자 감소로 재정 부담이 커졌다’는 이유를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했던 시기에는 각 대학이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귀향 버스는 차츰 자취를 감췄다.

24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열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열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대면 수업 전환과 함께 귀향 버스 사업도 재개되고 있다는 게 서울 지역 여러 대학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고려대·서울시립대·중앙대 등에선 2022년부터 순차적으로 귀향 버스 운영을 재개했다. 서울의 한 대학 학생복지위원회 관계자는 “시중 고속버스보다 20% 정도 싼 가격에 표를 구할 수 있어서 학생들의 수요가 꾸준히 있다”며 “학기 중인 추석엔 희망 인원이 몰려 귀향 버스를 추가 편성해야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