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2일 국립대전현충원 순국선열 묘역을 찾아 참배한 자리에서 취재진이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대선 출마 대신 국회의장 임기를 지키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정치권은 해석했다. 우 의장과 가까운 인사도 “우 의장이 대선에 나갈 상황이냐”고 반문한 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우 의장이 출마할 가능성은 제로(0)”라고 했다.
우 의장 본인과 주변 인사들이 대선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도 우 의장이 대선 잠룡(潛龍)으로 거론되는 건 12·3 비상계엄 사태 영향이다. 우 의장이 지난해 12월 3일 밤 비상계엄 해제를 위해 67세 나이에 출입이 막힌 국회 담을 넘는 모습은 국민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야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본회의를 당장 개의해야 한다”고 외치는 가운데서도 “아직 안건이 안 올라왔다. 절차적 오류 없이 해야 한다”며 차분하게 진행하는 모습도 박수를 받았다. 우 의장은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2차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능성 때문에 국회를 24시간 지켰다.
우 의장의 광폭 행보에 그의 친정인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 대표에게 쏠릴 관심이 우 의장에게 빠져나간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난달 한 민주당 의원은 “변수에 따라 상황이 어떻게 180도 바뀔지 모르는 게 대선 판”이라며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는데 우 의장이 100% 대선에 안 나온다, 확언하긴 힘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조선일보·케이스탯리서치가 지난 21~22일 조사한 범야권 후보 지지도에서 우 의장은 6%로 1위 이 대표(31%)와 격차가 크긴 했지만 3번째(김동연 경기지사 7%, 김부겸 전 총리 6%)로 나타났다.
우 의장이 지금 가장 정성을 들여 ‘키우고 있는 소’는 개헌이다. 우 의장은 지난 2일 국회 시무식에서 올해 3대 목표 중 하나로 개헌을 꼽았다. 지난달 19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나는 원래 개헌론자”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회 개헌 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다음달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띄우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여야 지도부와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 의장은 22대 국회 전반기(지난해 5월~내년 5월)를 개헌의 적기로 보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 부재 상태에서 개헌의 성사 여부는 상당 부분 우 의장의 견인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