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양국의 긴밀한 협력”을 당부했다. 전날 북한의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 주변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향후 중국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윤 당선인 측은 이날 ICBM 현안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와의 ‘원보이스’(one voice) 대응도 강조했다.
윤 당선인과 시 주석의 통화는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 25분간 이뤄졌다. 시 주석이 대통령 취임을 앞둔 당선인 신분의 한국 지도자와 통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통화 직후 “윤 당선인과 시 주석은 오늘 통화에서 수교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한중관계 발전을 이루어 나가자는 데에 뜻을 같이했다”면서 “고위급 전략적 소통을 활성화해 한·중 관계 현안을 잘 관리해 나감과 동시에 공급망·보건·기후변화·환경(미세먼지 등)·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윤 당선인과 시 주석 간의 통화는 북한의 ICBM 도발 이전에 일정이 조율됐다. 하지만 전날 북한이 ICBM을 발사하면서 이날 통화의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북한의 심각한 도발로 인해 한반도 및 역내 긴장이 급격히 고조돼 국민적 우려가 크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인수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민감한 외교 현안에 대한 중국 정상의 언급을 우리가 밝힐 수는 없지만,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앞으로 '상호 존중과 협력의 정신'으로 한중 관계를 진전시켜 나가기 위해 시 주석과 함께 노력해 나가길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고, 시 주석은 한·중 양국을 '이사 갈 수 없는 가까운 이웃'으로 표현하며 “양국과 두 나라 국민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윤 당선인과 시 주석은 또, 윤 당선인 취임 후 이른 시일 내 만남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고 윤 당선인 측이 전했다.
이날 북한의 ICBM 도발과 관련한 발언을 전하면서 윤 당선인 측이 신중한 기류를 보인 점이 눈에 띈다. 그 배경에는 “안보에는 원보이스”(김 대변인)라는 인식이 작용했다고 한다. 최근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이전과 관련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안보 충돌’ 양상을 보여왔지만, 적어도 북한이 도발을 감행한 상황에서는 엇박자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데 양측이 공감대를 이룬 분위기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 ICBM에 대한 질문에 “안보 문제는 현직 대통령이 원보이스 메시지를 내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며 “현재 대통령과 협의가 안 된 상태에서 안보 문제에 대해 다른 메시지가 나가면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도 이날 오전 삼청동 인수위 브리핑에서 “군 최고 통수권자(문 대통령)의 지휘가 명료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반보(步) 뒤에 서 있는 것이 관례이자 저희의 도리”라고 설명했다. 이날 통화 직후 인수위 내부에서는 “지금 상황이 엄중한데 우리가 외교관계를 주도하는 것처럼 비추면 곤란하다”, “마음 같아서는 통화 내용을 공개하고 싶지만, 아직 문 대통령이 있지 않나”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날 윤 당선인과 시 주석 간의 통화에 앞서, 문 대통령은 서훈 국가안보실장에게 윤 당선자를 직접 찾아 현안을 브리핑하라고 지시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서 실장이 발사 관련 동향과 정부 대응 조처, 향후 전망과 대책을 브리핑했다”고 전했다. 서 실장이 윤 당선인을 공식 방문한 것은 대선 직후인 지난 12일 이후 두 번째다.
이런 움직임과 별도로 윤 당선인은 북한을 향해선 강도 높은 입장을 내놨다. 윤 당선인은 이날 오전 ‘서해수호의 날’을 기념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북한에 엄중하게 경고한다. 도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대한민국은 더욱 굳건한 안보태세를 갖춰 자유와 평화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인수위 관계자는 “복잡다단한 대북 이슈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미세 조율이 인수위 내부에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