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활동 금지, 잘못 베꼈다"…尹계엄에 드리운 舊헌법 그림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사진 YTN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사진 YTN 캡처

 
검찰의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차츰 속도를 내면서 12·3 비상계엄 미스터리의 실마리가 하나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계엄 직후 정치권에서 나온 최대 의문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26년을 검사로 지낸 윤석열 대통령이 왜 느닷없이 국회의원 대부분이 서울에 머무는 평일 밤 10시 28분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냐는 것이었다. 국회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제77조 5항)는 현행 헌법에 따라 단 2시간 33분 만에 계엄을 해제했다. 헌법과 계엄법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국회·정당의 활동 금지’가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에 포함된 점도 논란거리였다. 율사 출신 여당 의원조차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고 말한 이유다.

윤 대통령의 대리인단은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포고령 1호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있을 당시의 예문을 그대로 베껴 왔다”며 “문구의 잘못을 (윤 대통령이) 부주의로 간과했다”고 설명했다. 비상계엄의 일부 과정이 옛 헌법에 따라 이뤄졌고, 이는 김 전 장관의 실수라는 취지다. 

실제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9차 헌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었다. 7차 헌법(1972년 10월 개정)에는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는 조항(제59조 1항)이, 8차 헌법(1980년 10월 개정)에는 ‘대통령은 국가의 안정 또는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할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국회의장의 자문 및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후 그 사유를 명시하여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는 조항(제57조 1항)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아무래도 윤 대통령이 현행 헌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1972년 10월 유신이나 1980년 5월 쿠데타 과정을 참고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1980년 5월 17일 서울 중앙청에서 열린 비상국무회의장에 무장한 군인이 1~2m 간격으로 배치돼 있다. 신군부의 압력으로 결국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키로 결의했다. [중앙포토]

1980년 5월 17일 서울 중앙청에서 열린 비상국무회의장에 무장한 군인이 1~2m 간격으로 배치돼 있다. 신군부의 압력으로 결국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키로 결의했다. [중앙포토]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포함된 구(舊) 헌법을 참조한 흔적은 검찰 공소장에도 찾을 수 있다. 16일 김용민 민주당 의원실이 제공한 조지호 경찰청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달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당시 경제부총리 신분이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조치사항이 담긴 문건을 건넸다. 미리 준비된 문건에는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지원금·임금 등 현재 운용 중인 자금 포함 완전 차단 ▶국가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가 비상입법기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쿠데타 직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한 게 대표적이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말 내지 4월 초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식사하면서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6월쯤에도 김 전 장관, 여 사령관과 식사하던 도중 “비상대권이나 비상조치가 아니면 나라를 정상화할 방법이 없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1971년 성탄절 자정 미사에서 당시 공화당의 비상대권(非常大權) 입법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 발언 직후 KBS는 곧바로 성탄미사 생방송을 중단했다. [중앙포토]

김수환 추기경이 1971년 성탄절 자정 미사에서 당시 공화당의 비상대권(非常大權) 입법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 발언 직후 KBS는 곧바로 성탄미사 생방송을 중단했다. [중앙포토]

 
윤 대통령이 두 차례 언급한 비상대권(非常大權) 역시 민주화 이후 사라진 개념이다. 국내에선 1971년 12월 21일 공화당이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발의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때 법률과 상관없이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한다. 하지만 특별조치법 발의 사흘 뒤 김수환 추기경이 KBS를 통해 생방송 된 성탄절 미사에서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 유익한 일입니까”라고 일갈하며 논란이 됐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상대권은 현행 헌법은 물론 그 이전 헌법에서도 인정할 수 없는 개념”이라며 “‘군주의 대권’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민주주의 국가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