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세베로도네츠크에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연기와 흙이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유럽 "우크라 지원 멈추고 전쟁 끝내자"
최근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독일·루마니아 등에서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응답(35%)이 ‘러시아를 응징해야 한다’는 답변(22%)을 앞섰다.

지난 16일 키이우를 방문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오른쪽)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우크라이나는 개전 이후 최악의 수세에 몰려 있다. 러시아는 키이우 퇴각 이후 동부 돈바스로 전선을 좁혔고,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대규모 포병전으로 전환하면서 주요 요충지들을 차곡차곡 함락시키고 있다. 이를 패퇴시키고 “크림반도(2014년 러시아 병합)까지 회복하는 승리”가 우크라이나의 목표지만, 서방의 무기와 재정 지원 없인 어림 없다. CNN은 “이번 전쟁이 승패가 판가름 나는 변곡점에 도달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푸틴플레이션'이 야기한 서방 균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가입국의 지난 4월 소비자물가는 9.2% 상승했다. 외환위기 시절이던 1998년(9.3%) 이후 최고치다. 식료품(11.5%) 가격이 가장 많이 올랐다. 유로존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8.1%, 미국은 8.6% 치솟아 모두 40년만에 최고치였다. 이른바 ‘푸틴플레이션(푸틴+인플레이션)’의 습격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물가 급등 속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도 불붙었다. 영국에선 철도 노조가 33년 만에 최대 규모 파업에 돌입한 데 이어, 법조·의료·교육 분야 노동자까지 파업 참여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에선 항공 관련 노동자들이 다음 달 파업을 예고했고, 벨기에는 20일 브뤼셀공항 보안요원의 파업으로 모든 출발 항공편이 취소됐다. 영국 철도 파업에 참여 중인 재러드 우드는 “싸우지 않으면 월세도, 난방비도 내지 못한다”며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로 인한 민심 이반에 프랑스 정부가 먼저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 19일 열린 총선에서 여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프랑스의 집권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건 20년 만에 처음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가스‧전기료 상한선 설정 등으로 지지층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선거를 앞둔 다른 나라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독일은 오는 10월, 민심의 이정표로 불리는 니더작센에서 주의회 선거를 치른다. 이탈리아는 다음해 6월 총선 일정이 잡혔다. 미국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뒀다.

지난해 11월 독일 석탄화력 발전소의 모습. 연합뉴스
유럽은 고심 끝에 탈(脫)석탄 정책마저 내려놨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지난 19일 석탄발전소 긴급 재가동 방침을 발표했고, 이튿날 네덜란드도 석탄발전소를 최대 35%까지 가동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등 다른 EU 국가도 비슷한 결정을 고려하고 있다. 일부 지역 언론은 “탄소 중립과 러시아 응징 중 우선순위를 고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애타게 SOS를 외치고 있다. 지난 19일 드미트로 쿨레바 외교장관은 “미국과 유럽 동맹국은 우크라이나에 신속히 적정한 숫자의 고성능 중화기를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서방은 기존 대러 제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제재를 더 부과하라”고 요구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서방, 대의명분·현실, 선택의 순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외신은 서방이 대의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선택의 순간을 맞았다고 전했다. 침략 전쟁, 민간인 학살 등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지른 ‘러시아 응징’이란 명분은 분명하지만, 자국민의 고통을 외면한 채 무한정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방은 EU 정상회의와 주요 7개국(G7) 및 나토 정상회의 등을 잇따라 개최하면서 내부 단속과 함께 대안 모색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서방은 러시아가 주변 나토 회원국을 넘보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군수 지원을 지속하고, 우크라이나는 한반도와 같이 종전없는 휴전상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자충수가 된 대러 제재를 일부 완화할 가능성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 러시아산 원유 수출을 허용하되, 가격 상한선을 두자는 미국의 제안이 EU에서 동의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대러 제재에 일부 예외를 허용해, 치솟은 유가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려는 조처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