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납치하려던 같은 아파트 주민…法, 이례적 구속기각 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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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40대 남성의 미성년자 약취 미수 사건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가해자 A씨(42)에 대한 수사기관의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지난 9일 기각하면서다. 이후 A씨에 대해 구속수사가 적합하지 않다고 본 법원의 판단이 적합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A씨는 지난 7일 오후 7시15분쯤 경기 고양시에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10대 여학생 B양을 흉기로 위협해 납치하려다가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A씨는 B양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 승강기에 따라 오른 뒤 미리 준비한 흉기로 위협했다. B양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한 뒤 아파트 꼭대기로 데려갈 심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파트 18층에서 다른 아파트 주민을 만났고 B양이 소리를 지르자 A씨는 계단으로 도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폐쇄회로TV(CCTV)를 분석해 추적에 나섰고 2시간 만에 A씨를 아파트 주차장에서 체포했다. 도주한 A씨는 아파트를 나선 뒤 인근 초등학교 담벼락을 넘어서 숨어있다가 자신의 차량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B양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 고양경찰서. 연합뉴스

경기 고양경찰서. 연합뉴스

경찰은 미성년자 약취 미수 혐의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가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고 도주 우려가 있다고 봤다. A씨가 흉기로 B양을 협박한 점 등을 볼 때 피해자 위해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했다. 사건 직후 B양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신변 보호조치를 한 것도 이런 점을 고려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A씨 자택에서 범행 동기로 볼 여지가 있는 물품들도 발견했다. A씨는 처음엔 “훈계하려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이어진 조사에선 혐의를 시인했다고 한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 9일 조영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당직 판사는 A씨에 대한 영장청구를 기각했다. “A씨가 도망하고 재범할 우려가 적으며 피해자를 위해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A씨가 초범인 점, 일정한 주거와 직업이 있는 점, 혐의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한 것 같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A씨가 관련 전과가 없고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가정이 있는 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한 종합적 판단의 결과로 보인다”며 “구속전 피의자심문결과 이 건은 구속수사를 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 사건 관련해 재범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된 건 이례적인 일이다. 불안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라면서도 “A씨의 범행이 우발적인지, 범행을 사전에 준비한 정황이 있는지, 실제 재범의 우려가 없는지 등을 고려해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수사를 이어가는 한편 구속영장을 재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 결과가 나오는 데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