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LRHW를 처음으로 받은 제1 다영역부대(MDTF)도 주목받고 있다. 미 육군의 다영역부대는 미 해병대의 해병연안연대(MRL)와 함께 미국이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를 중국ㆍ러시아와의 무력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한 히든카드이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 중 부쩍 커진 중ㆍ러
MDTF와 MLR은 미국이 중국ㆍ러시아에 이기려면 지금의 전력으론 안 된다는 판단 때문에 만들어졌다.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전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미군은 가볍고 재빠른 편제로 바뀌었다. 게릴라나 테러리스트에겐 문제가 없지만, 중ㆍ러와 같은 국가에겐 턱도 없게 됐다.
게다가 중ㆍ러는 미국에 도전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전쟁과 반(反)접근ㆍ지역거부(A2/AD)를 갈고 닦았다.
러시아가 창안한 하이브리드 전쟁은 기존의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전쟁이다. 테러ㆍ범죄ㆍ인지전ㆍ전자전ㆍ사이버 공격 등 다양한 형태의 비군사적 작전을 동시에 섞어 구사하는 전략이다.
중국은 태평양의 주요 섬과 섬을 가상의 선(도련선)으로 그어 놓고 미국에게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 제1 도련선엔 한반도도 포함돼 있다. A2/AD는 도련선 안으로 미국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전략이다.
중·러는 하이브리드 전쟁과 A2/AD를 실전에 써먹을 능력도 있다. 미국 모든 전산망을 교란할 능력의 러시아의 해커 부대와 중국의 ‘항모킬러’ DF-21 대함탄도미사일(ASBM)이 그 예다.
미국은 지금의 미군으론 중ㆍ러의 하이브리드 전쟁과 A2/AD를 상대할 수 없다고 인식했다.
다양하고 복잡해진 21세기 전쟁상
중ㆍ러의 하이브리드 전쟁ㆍA2/AD에 대한 미국의 응전은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s)과 연안 작전(Littoral Operation)이다.
지금까지는 육ㆍ해ㆍ공은 따로 국밥이었다. 육군은 땅에서, 해군은 바다에서, 공군은 하늘에서 적과 싸웠다. 그런데 미 육군은 이제 싸움터(영역)를 땅에서 벗어나 바다와 하늘, 우주까지 넘나들려고 한다. 또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사이버ㆍ전자기 공간으로 전쟁터를 넓히려고 한다. 이게 다영역 작전이다.
예를 들면 적 전투함을 지상의 고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가라앉히고, 전자기파로 적의 인공위성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다영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자산을 한군데 모아 놓으면 신속하게 적이 인지전이나 사이버 공격ㆍ전자전으로 벌이는 선전ㆍ선동 활동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고, 후방의 적 지휘체계나 감시ㆍ정찰체계를 제압할 수 있다.
연안 작전은 미 해병대가 ‘섬 건너뛰기(Island Hopping)’를 하려고 세운 전략이다. 미 해병대가 중국 본토에 대규모 상륙작전을 벌인다면 자살행위다.
중국은 남ㆍ동중국해의 섬에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 때문에 군사기지를 세웠다. 그러나 중국 본토보단 방어가 상대적으로 허술하다. 연안 작전을 통해 외곽에다 교두보를 다진 뒤 차근차근 본토로 들어가겠다는 게 미 해병대의 속셈이다.
이 같은 작전을 펼치기 위해 나온 게 미 육군의 MDTF와 미 해병대의 MLR이다.
인도·태평양에 2개의 MDTF 배치
미 육군의 첫 MDTF인 제1 MDTF는 2017년 3월 인도ㆍ태평양사령부 예하에서 창설됐다. 2021년 4월 유럽과 아프리카를 관할구역으로 삼는 제2 MDTF가 독일에서 꾸려졌다. 인도ㆍ태평양사령부는 지난해 9월 제3 MDTF를 아래에 뒀다.
MDTF는 여단급 부대다. 미 육군은 모두 5개의 MDTF를 운영할 계획이다. 2개는 인도ㆍ태평양에(현재 1개), 1개는 유럽에(현재 1개), 1개는 극지방에 두며, 그리고 마지막 1개는 전 세계를 관할구역으로 삼을 방침이다.
모든 MDTF는 재빠르게 해외에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제1 MDTF는 지난 2월 LRHW를 기지인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합동기지에서 약 4990㎞ 떨어진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배너럴까지 옮긴 뒤 긴급전개했다.
MDTF는 첩보ㆍ정보ㆍ사이버저자기전ㆍ우주(I2CEWS)대대, 전략화력대대, 방공대대, 여단지원대대 등 크게 4개 예하 대대로 나뉜다.
I2CEW대대는 지상과 공중, 해상뿐만 아니라 우주, 사이버ㆍ전자기 등 5개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지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획득한 뒤 이를 공유하면서, 해킹ㆍ재밍ㆍ인지전을 수행하는 부내다.
전략화력대대는 LRHW 1개 포대, 하이마스 1개 포대, 중거리능력(MRC) 1개 포대를 갖고 있다. MRC는 미국 해군의 Mk.41 수직발사체계(VLS)를 트레일러에 얹은 지상형이다. MRC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함대공 미사일인 SM-6를 발사할 수 있다.
미국의 다영역 작전과 MDTF를 연구한 조상근 KAIST 국가미래전략기술 정책연구소 연구교수는 “MDTF는 공격ㆍ수송 헬기 등 항공 자산도 추가할 계획”이라며 “이들 항공 자산은 모두 유무인 복합 체계(MUM-T)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MDTF는 전구(戰區ㆍTheater)의 선봉이자, 해결사며, 소방수인 셈이다.
'섬 건너뛰기'로 차근차근 중국 본토 압박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역에선 미국은 섬 건너뛰기 전략을 통해 일본 본토로 진격했다. 일본이 점령한 섬 가운데 중요한 섬은 건너뛰면서 다른 섬을 점령하는 방식이다. 강력한 방어 거점을 우회해도 배후를 차지하면 일본의 보급선을 차단할 수 있었다.
21세기 섬 건너뛰기는 적으로부터 섬을 뺏거나 빈 섬에 거점을 구축해 아군의 영역을 단계적으로 넓히는 것이다. MLR은 적의 기지를 타겨할 뿐만 아니라 적의 활동을 감시하고, 적의 보급선을 끊으면서, 아군에 보급할 수 있다.
미 해병대는 지난해 3월 첫 번째 MRL을 하와이에 배치했다. 두 번째 MRL 배치 지역으로 오키나와가 유력하게 꼽히며, 세 번째는 괌이 될 거라고 한다.
MLR의 병력 규모는 1800~2000명 수준이나 앞으로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연대 예하에 MLR 본부, 연안전투팀(LCT), 연안 대공대대, 전투근무지원 대대 등으로 구성된다. LCT는 보병대대에 대함미사일 포대가 더한 부대다. 기본적인 전투 임무 이외 장거리 대함 사격ㆍ전방 무장 및 연료 재보급(FWR)ㆍ정보ㆍ정찰ㆍ방공ㆍ해양감시 조기경보 등 맥가이버처럼 만능의 작전을 펼친다.
MLR은 합동경전투차량(JLTV)에 스텔스 대함미사일 NSM 2발을 실은 해군-해병대 원정작전 대함 타격체계(NMESIS), 공격 능력을 갖춘 MQ-9 리퍼 무인기,AN/TPS-80 대포병레이더 등을 보유한다
미 해군은 MRL을 위해 작고 값싼 중형상륙함(LSM)을 다량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이스라엘도 만든 MDTF, 한국도 창설 고려해야
MDTF와 MLR은 한국에도 함의가 있다.
지난달 열린 한ㆍ미 연합해병 상륙훈련인 ‘쌍용훈련’의 미국 측 참가 부대는 제1 해병원정군(Ⅰ MEF)이었다. 그동안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제3 해병원정군(Ⅲ MEF)을 보내곤 했다.
정부 소식통은 “Ⅲ MEF는 앞으로 MLR 위주의 부대로 재편 중이기 때문에 전면전이 벌어질 한반도 전장 환경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쌍용훈련을 Ⅰ MEF와 준비했으며, 앞으로 Ⅰ MEF와 협조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유사시 미국은 한국에 MDTF를 배치한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봐야 한다. 내륙 깊숙이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MDTF의 존재에 대해 중국은 당연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한국도 MDTF의 창설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스라엘은 이미 98 유령부대(Ghost Unit)이란 자체 MDTF를 만들었다.
조상근 교수는 “한국은 북한을 상대하지만 인근 국가의 위협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도 중ㆍ러의 하이브리드 전쟁을 열심히 연구했을 것”이라며 한국판 MDTF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한ㆍ미 연합방위 체제로 대응하려면 복잡한 계통을 거쳐야 하므로 시기를 놓칠 수 있다”며 “MDTF처럼 다양한 자산을 모아 놓아 감시→결심→대응(타격)의 주기를 단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조 교수의 도움을 받아 현존 전력을 바탕으로 한 한국판 MDTF를 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