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30년 이상이 지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은 미국의 지원요소(정보ㆍ지휘통제ㆍ정밀타격 등)를 제외하면, ‘산업화시대 전쟁’의 모습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병사들은 교통호에서 소총과 수류탄으로 싸우고 있고, 재래식 포병이 전투의 주도권을 좌우하며, 전차가 공세의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쟁수행 방식에서 이렇게 심대한 격차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방예산ㆍ국방과학기술ㆍ무형 전투력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2~11위 합계보다 많은 미국 국방비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분석한 세계 국방비 지출액(지난해 기준)은 2021년보다 3.7% 늘어나 사상 최고치인 2조 240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이 8,770억 달러로 압도적 1위였다. 2위는 중국(2920억 달러), 3위는 러시아(864억 달러)였다. 9위는 한국(464억 달러), 10위는 일본(460억 달러), 11위는 우크라이나(440억 달러) 순이었다.
미국의 국방 예산은 중국의 3배, 러시아의 10배 이상이다. 전 세계 국방예산에서 약 40%를 차지하고, 2∼11위 국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독일의 킬(Kiel) 세계경제연구소는 지난해 2월 개전 이래 1년 동안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주의ㆍ재정ㆍ군사적 지원을 종합하면 총 750억 달러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국방예산 지출액(2022년)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이러한 대규모 지원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시도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초격차의 미국 국방과학기술
『2021년 국방과학기술조사서』(국방기술진흥원 발간)에서는 미국의 국방과학기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막대한 국방연구개발(R&D) 예산 투입으로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며, 타 국가들이 기술발전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
미국의 국방연구개발 예산(2020년 기준)은 약 1171억 달러로서, 러시아(24억 달러)의 약 49배, 중국(136억 달러)의 약 9배에 달한다. 참고로 한국(29억 달러)을 기준으로 하면 약 40배이다.
위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의 국방과학기술은 미국을 100점(1위)으로 가정했을 경우 89점으로서 프랑스와 공동 2위 수준이다. 하지만, 미국과 나머지 군사 선진국들과 격차는 현저하다. 90점대에는 그 어떤 나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1위 2위의 격차는 미세하지만,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89∼81점 사이에 러시아ㆍ프랑스ㆍ독일ㆍ중국 등 7개국이 집중돼 있다. 참고로 한국은 79점으로서 9위이다. 특히, 러시아는 지휘통제/통신, 기동 분야가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다. 이러한 한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무기체계의 손실과 전ㆍ사상자의 증가로 귀결하고 있다.
인력과 훈련, 경험에서도 압도적인 미국
미군은 모병제 군대이다. 인력획득 과정에서 민간조직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체계적인 모병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으며, 급여 및 복지 분야에 전체 국방예산의 약 38%를 투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병사로 입대하는 것은 ‘최악의 직업’ 3위(2020년 설문조사)에 올라 있을 정도로 여건이 녹녹하지 않다. 군대의 고유한 특성과 반복적인 전투현장 파병, 생명을 잃을 가능성, 고강도의 스트레스가 수반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미군은 모병 인력의 질적 한계를 실전적 교육훈련과 경험 축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1980년대 군사혁신 과정에서 발전시킨 MILESㆍBCTPㆍTop GunㆍRed Flag, NTCㆍJRTC 같은 훈련 방법과 인프라가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훈련의 교훈을 축적한 뒤 환류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욱이, 지속적인 실전 경험은 대규모 비용과 인명피해 발생이라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형 전투력 측면에서 다른 나라들이 결코 모방할 수 없는 강점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 2010년대 러시아의 군사혁신은 무형 전투력 측면에서 실패했다. 우선, 징병제ㆍ모병제를 혼용했지만, 모병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징집 병사들은 복무기간이 짧아서(12개월) 전투력 발휘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교육훈련은 비용 절감을 위해 학교의 통ㆍ폐합에만 관심이 있었고, 질적인 개선은 소외됐다. 또한,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연계된 중앙집권적인 조직문화는 러시아군의 비효율성을 더욱 증대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했던 것이다.
한국의 국방혁신이 나아갈 길은
미군의 방향은 참고하되, 한국적 특성과 실현 가능성을 고려한 혁신이 필요하다.
1996년, 한국의 전문가들이 미국을 방문했다. 일명, ‘RMA’로 일컬어지던 군사혁신 논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출장 결과보고서’에는 미국 전문가(Andrew F. Krepinevich, Brian Sullivan 등) 의견도 포함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국력의 한계(미국 GDP의 15%)에도 불구하고 항공모함 중심의 군사혁신을 추진했다가 실패했다. 한국적 특성에 부합하는 군사혁신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관점과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는 3가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목표ㆍ수단ㆍ방법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3가지 요소에 불균형이 발생하고, 그 정도가 심할수록 실패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초기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야 ‘목표’를 조정(작전범위 축소)하고, ‘수단’을 보강(부분 동원)한 바 있다.
미국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국방예산은 약 20분의 1, 국방연구개발 예산은 약 40분의 1, 국방과학기술 격차는 약 20∼30년이다. 따라서 국방혁신 4.0 추진 과정에서 ‘목표’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방법’도 현실적이고 창의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둘째, ‘기술 만능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미국조차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전한 바 있다. 러시아의 경우, 장비의 70%를 현대화했다고 국방장관이 직접 자랑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다.
기술은 군사혁신의 ‘전부’가 아니라, ‘촉매제’다. 즉, 기술은 무기체계를 포함한 군사력의 제 요소에 변화를 촉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군사혁신은 새로운 기술을 무기체계에 적용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상호 연계성을 유지하면서, 부대구조ㆍ교육훈련ㆍ조직문화 등으로 혁신을 확산시키는 것이야말로 더욱 어려운 과정이다.
셋째, 유형적 요소(hardware)가 필요조건이라면, 무형적 요소(software)는 충분조건이다. 후자는 병사들의 적개심, 전투의지 이상을 의미한다. 핵심은 전투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체계적인 교육훈련과 경험의 축적 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초급간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병사 지휘 시 가장 힘든 점”을 묻는 설문에서 ‘병사들을 관리 통제하는 일(24.2%)’과 ‘병사 지휘에 필요한 역량 부족(22.3%)’이 비슷하게 나온 것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급여 혹은 복지도 중요하지만, 훨씬 더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문제해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식 전쟁’은 공중전력 위주의 대규모 정밀타격, 적의 지휘통제체계 마비, 단기간의 지상 작전, 그리고 전ㆍ사상자와 민간인 피해의 최소화 등으로 상징된다. 이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방예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의 국방과학기술, 실전적 교육훈련과 경험의 축적 등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미국을 제외한 그 외 나라의 전쟁에서는 산업화시대와 정보화시대 특성이 당분간 공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국방혁신 4.0도 이러한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면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