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지연기 썼는데 썩은 사과 10만 개…대법 "손해 더 배상해야"

300만원짜리 ‘농산물 숙성지연 장치’를 구입해 사과를 보관했는데도 사과가 갈변해 약 8000만원의 손해를 본 농장주가 장비 제조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이 농장주의 손을 들어줬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사과 농사를 짓는 농장주 A씨가 농산물 숙성지연 장치 판매업체 대표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A씨의 패소 부분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에 지난 18일 돌려보냈다. 

앞서 A씨는 2019년 10월 B씨로부터 해당 장치를 구입해 저온창고에 설치하고 수확한 사과 1900상자를 보관했다. 하지만 3개월 후인 2020년 1월부터 일부 사과에서 갈변 및 함몰 증상이 나타났고 사과연구소 측에 의뢰한 결과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이 장치에서 발생하는 오존임을 알아냈다. 

보관 중이던 사과의 92%(약 10만5000개)가 갈변 증상을 보이자 A씨는 결국 2020년 7월쯤 부패가 심한 사과 232상자는 폐기했다. 이후 사과값을 물어내라며 B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1심은 4200만원 2심은 3700만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1·2심 모두 B씨가 장치의 작동시간을 적정하게 설정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또 손해 발생 시점을 B씨가 장치를 제거한 날로 따져 배상액을 정했다. 다만 2심은 1심과 달리 “오존 노출이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고 설명서에 잘못된 시간 설정으로 농작물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기재돼 있다”며 B씨가 오존의 위험성을 고지할 의무가 없었다고 봤다.

대법원은 2심에 법리적 오해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가 준 장치 설명서엔 오존의 부작용을 표시한 내용이 없었다”며 “오존의 위험성을 농장주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었는데 원심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고  A씨가 패소한 부분을 뒤집었다. 손해액 산정 기준시점 역시 장치 가동 중단일부터가 아니라 갈변하지 않은 사과를 판매한 시점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재판부는 A씨가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만을 주장하였더라도 법원은 민법의 특별법인 제조물 책임법을 우선 적용해 심리를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