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물건’을 썼다고 인정되면, 죄명에 ‘특수’가 붙는다. 특수폭행, 특수공무방해, 특수협박, 특수주거침입, 특수손괴, 특수강제추행 등이다. ‘특수’가 붙으면 형량이 무거워진다. 폭행죄는 최대 징역 2년이지만, 특수폭행죄는 최대 5년으로 늘어나는 식이다.
꽉 찼으면 위험, 비었으면 안 위험…절반 들었다면?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막걸리들.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막걸리가 절반 정도 들어 있는 페트병으로 초등학생의 눈가와 머리를 때린 사건에서 피고인은 “막걸리 페트병은 위험한 물건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사람의 생명·신체에 해를 가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고, 실제로 피해자의 신체에 해를 가하는 데 사용됐다”며 특수상해를 인정했다. 동종범죄 집행유예 기간 중 벌어진 일이라 실형 1년이 나왔다(서울서부지법, 지난해 8월 선고).
버리면 재활용, 휘두르면 위험…플라스틱

경기도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 쌓인 다양한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없음. 연합뉴스
이 밖에도 목욕탕에서 시비가 붙어 다른 손님의 이마를 내리치는 데 쓴 플라스틱 바가지, 회사 야외 흡연장에서 ‘왜 인사를 안 하느냐’며 동료를 때리는 데 쓴 50㎝짜리 플라스틱 막대 등도 법원에서 ‘위험한 물건’으로 보고 각각 특수폭행·특수상해 혐의를 인정했다(부산서부지원·대구김천지원, 모두 올해 6월 선고).
종이로도 때리지 말라…쇼핑백·신문지도?

가로 약 31.1cm, 세로 약 7.9cm, 높이 7.9cm, 무게 약 0.6kg의 에르메스 애플워치 박스가 든 종이가방은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다. 사진 애플
‘신문지를 여러 장 겹쳐 만든 몽둥이’가 위험한 물건인지 다퉜으나, 일단 아니라고 본 사례도 있다. “신문지를 돌돌 말고 테이프로 전체를 감아 딱딱하게 만든 것으로, 강아지를 부르거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바닥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용도(딸의 법정 증언)”인데 배우자를 때리는 데 썼다. 검찰은 특수폭행으로 기소해 항소심까지 위험한 물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의 신문지 몽둥이를 수사과정에서 압수하지 않은 바람에 폭행만 인정됐다. 대구지법은 올해 2월 “두께나 강도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제출되어 있지 않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론 위험한 물건이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작아도 단단하면 던질 때 위험…돌·진흙

방울토마토 크기의 돌도 던지면 사람이 다칠 수 있다. 연합뉴스
길가에 있던 진흙덩어리로 배우자 머리를 때린 사건에서는 ‘때릴 때 진흙이 부서졌는지’가 쟁점이 됐다. 피고인은 “마른 진흙덩어리로 때리자 흙가루가 떨어지며 크기가 조금 작아지긴 했으나 덩어리가 부서지진 않았다”고 했고, 피해자는 “성인 남성 주먹 크기의 누런색 돌로 때려 머리가 부어오르고 멍이 들었다”고 했다. 수원지법은 “머리를 내리쳐도 부서지지 아니하고 타격 부위에 멍이 생기게 할 정도로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있던 상태의 진흙덩어리는 위험한 물건”이라며 특수폭행을 인정했다(2021년 9월 선고).
어떻게 썼길래…‘위험한’ 빗·집게·반지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는 다양한 큐빅 반지 이미지. 구글 화면 캡쳐
교도소에서 빨래집게로 다른 재소자의 유두와 성기 부위를 잡아 비튼 사건은 특수강제추행으로 인정됐다.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은 빨래집게는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고 주장해봤으나, 대전지법 공주지원은 피나 고름이 나올 정도로 비틀었다면 “그 사용방법에 비추어 피해자가 생명 또는 신체에 위험을 느낄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이라고 판단했다.
큐빅 반지를 낀 채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 것이 ‘특수상해’인지 판단하기 위해 판사가 반지를 자세히 들여다본 사건도 있다. “반지는 중앙에 하트 모양의 큰 큐빅이 있고 물방울 모양의 중간 큐빅 3개와 원 모양의 작은 큐빅 11개가 큰 큐빅을 둘러싸는 모양이며, 피고인은 왼손 검지에 1개, 중지에 2개를 착용한 채 주먹으로 가격해 피해자의 눈썹 위 피부가 찢어지고 많은 양의 피가 흘렀다”면서 위험한 물건이란 결론을 내렸다(의정부지법, 지난해 1월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