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10년 넘게 채소 장사를 한 40대 A씨는 코로나19가 확산세 악화일로이던 2년 전 가게 문을 닫았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경기 침체가 심화했고, 대면 방식의 장사를 하는 전통시장 상인들은 매출 타격을 면하지 못했다. 하루하루 급감하는 매출을 버텨내지 못한 A씨는 결국 가게를 접고 빌딩 청소 일을 하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남대문시장의 대도종합상가 D동 2층 한 공실에 옆 가게 물건들이 쌓여있다. 상인들은 ″어차피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아 공실에 물건을 보관했다″고 말했다. 이찬규 기자
추석 연휴 전 약 일주일은 전통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대목’이라 불린다. 하지만 지난 25일 오후에 찾은 남대문시장에선 분주히 움직이는 상인·손님 사이로 폐자재가 아무렇게나 적치된 빈 점포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식당이 밀집한 일부 골목을 제외하면 유동인구도 많지 않았다. 종합상가 안쪽은 바깥보다 더 한산한 분위기였다. 빈 점포에는 ‘임대문의’ ‘물건을 놓지 말라’ 등의 문구가 붙어 있었지만, 바로 옆 기념품 장사를 하는 한 상인은 “어차피 아무도 안 들어올 것 같아서 우리 물건을 쌓아 뒀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이 다시 찾아 매출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분위기”라고 전했지만, 실제 상인들의 체감은 달랐다. 갈치골목 인근에서 33년째 수산물을 파는 김영한(62)씨의 수조는 4개였지만 물고기는 광어 1마리뿐이었다. 김씨는 “괜히 들였다가 장사가 안되면 생선만 버리게 된다”며 “시장에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 오다 보니 식당 외 다른 곳은 파리만 날린다”고 푸념했다. 김씨네 옆 생선 가게도 지난 겨울 문을 닫았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372개이던 전국 전통시장 수는 2017년(1450개)까지 매년 증가하다 2018년부터 내림세로 꺾여 2021년엔 1408개였다. 전통시장 내 전체 점포 수는 2017년부터 2021년 5년 사이 25만109개에서 24만1080개로 약 9029개 줄었고, 같은 기간 빈 점포 수는 1만7504개에서 2만2663개로 5159개 늘었다. 남대문시장의 한 상인은 “문 닫는 곳이 많아지면 손님이 덜 오고, 기존에 장사가 나름 잘 되던 가게도 어려워지는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말했다.
2021년 기준 서울 지역 전통시장 내 빈 점포 4810개 중 남대문시장 1000개, 동대문종합시장 450개, 경동시장 316개 등 대형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특히 높았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빈 점포 비중이 수도권에 쏠린 현상에 대해 “수도권이 상가 임대료 등 비용 면에서 지방보다 비싸기 때문에 매출 감소를 견딜 수 있는 여지가 더 적을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 이후 전반적으로 혹한기인 경기 상황이 대형 시장에서 좀 더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전통시장과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를 실시한 지 11년이 지났지만, 시장 상인들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남대문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위기의식은 똑같다. 시장에서도 배달해준다고는 하지만 접근성·다양성·편리성 면에서 대형마트를 따라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분식 장사를 하는 정해연(52)씨는 “아무래도 배달 문화가 확산하고 e커머스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면서 전통시장의 경쟁력이 쪼그라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전통시장 활성화 지원 예산을 올해보다 387억원 줄어든 3511억원 편성했다. 이정희 교수는 “단순히 예산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미국의 파머스마켓(Farmers Market)처럼 전통시장을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발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경영혁신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영대 의원은 “전통시장이 새로운 유통 구조와 소비 트렌드에 맞게 체질을 개선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준호·이찬규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