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 사진 LG그룹
“(상속 협의서 작성 후 실무진이) 폐기했습니다.” (증인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
LG그룹 일가 상속 관련 분쟁은 고(故) 구본무 전 회장의 ‘유언 메모’ 존부를 다투는 것으로 시작됐다. 배우자 김영식 여사와 두 딸(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이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 재산을 다시 나누자’며 낸 소송이다.
5일 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부장 박태일)는 상속회복청구소송 첫 변론기일에 구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하범종 LG경영지원부문장을 증인으로 불렀다. 그는 20년 전 재무관리팀장 시절부터 구 전 회장에게 매일 아침 첫 보고를 올리고, 가족 개인 재산도 관리해 왔다.
LG일가 상속분쟁에 법정 선 고 구본무 최측근
이후 하 부문장은 사무실로 가 들은 말을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정리했고, 출력한 문서에 구 전 회장의 자필 서명을 받았다고 했다. “배우자보다도 신임이 두터웠냐”는 세 모녀 측 변호인의 질문에 그는 “신뢰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날 증언 내내 해당 문서를 ‘유언장’이 아닌 ‘승계 문서’라고 말했다.
세 모녀 측 “본 적 없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가 2021년 오송화장품뷰티산업엑스포에 참석한 모습. 사진 오송화장품뷰티산업엑스포
문제의 ‘메모’ 내지 ‘승계 문서’는 현재 없다고 한다. 임 변호사가 “문서를 어디에 보관했냐”고 묻자 하 부문장은 “저희 팀 서류 보관하는 데에 보관했는데 (현재는) 폐기됐다”고 했다. 상속은 상속인들 간 별도 협의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상속이 완료됐기에 해당 메모를 실무진이 폐기했다는 설명이다. 하 부문장은 “(LG그룹은 상속을 할 때) 유언장을 쓰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며 “(어차피) 법률적 효력이 있는 문서도, 유언장도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임 변호사는 “그룹 총수의 상속 유지(遺旨)를 담은 문서고, 서명까지 했는데 실무진에서 그냥 폐기하느냐”며 “(진술의) 신빙성 여부는 재판부가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장녀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사진 경기도
구 회장은 세 모녀가 상속재산분할 협의 방안에 동의해 놓고 이제 와서 이를 번복하려 한단 입장이다. 이날 재판에 구 회장과 김 여사 등 당사자들은 나오지 않았지만, 변호사들이 대신 뜻을 전했다. 구 회장 측 법률대리인 이재근 변호사는 “원고들이 지난해부터 뜬끔없이 유언장 있지 않나며 항의했고, 막무가내로 반복하는 것에 의아하지 않았느냐”며 하 부문장의 공감을 구했다. 이 변호사는 김 여사의 서명이 담긴, ‘가족을 대표해 경영 재산의 상속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동의서를 이날 법정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5월 세상을 떠난 구 전 회장은 ㈜LG 주식 등 2조원 규모의 유산을 남겼는데, 회장직을 이어받은 구광모 회장이 ㈜LG 주식 중 8.76%를, 나머지를 두 딸이 나눠서 상속받았다. 김 여사와 두 딸은 구 전 회장의 개인 재산인 금융투자상품·부동산·미술품 등까지 총 약 5000억원 규모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