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뱉고 의료진에 주먹질…'응급실 진상' 진료 거부할 수 있다

지난 2022년 3월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20대 남성이 처치를 거부하며 난동을 피우고 있다. [제보 영상 캡처]

지난 2022년 3월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20대 남성이 처치를 거부하며 난동을 피우고 있다. [제보 영상 캡처]

응급실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진에 욕설하거나 폭행을 휘두르는 경우 의료진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응급 의료를 방해하는 환자ㆍ보호자에 대한 진료거부 방침을 지침으로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 13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응급의료법상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지자체와 의료인 단체 등에 보냈다. 복지부는 “응급의료법 및 의료법에 기초해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의 범위를 명확하게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지침”이라고 밝혔다. 
응급의료법 제6조에 따라 응급의료종사자는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를 하여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 이번 지침은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지침은 “아래와 같이 응급실 내 폭력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는 진료 거부ㆍ기피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라며 구체적으로 사례를 밝혔다.  ▲응급의료종사자에 대한 구조ㆍ이송ㆍ응급처치 또는 진료를 폭행, 협박, 위계, 위력, 그 밖의 방법으로 방해하는 경우 ▲의료기관 등의 응급의료를 위한 의료용 시설ㆍ기재ㆍ의약품 또는 그 밖의 기물을 파괴ㆍ손상하거나 점거하는 경우 ▲환자 또는 보호자 등이 해당 의료인에 대하여 모욕죄, 명예훼손죄, 폭행죄,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는 상황을 형성하여 의료인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행할 수 없도록 한 경우다. 이에 따라 응급실에서 환자ㆍ보호자가 의사나 간호사를 폭행하거나 욕설ㆍ협박을 하면 의료진은 정당하게 진료를 거부할 수 있게 됐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용인세브란스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해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용인세브란스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해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침에 따르면 응급환자에 대해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는 경우는 진료 거부ㆍ기피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 ▲통신ㆍ전력 마비, 화재ㆍ붕괴 등 재난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경우 ▲응급의료기관 인력, 시설, 장비 등 응급의료자원의 가용 현황에 비추어 응급환자에게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는 경우 ▲환자 또는 보호자가 의료인의 치료방침에 따를 수 없음을 천명하여 특정 치료의 수행이 불가하거나, 환자 또는 보호자가 의료인으로서의 양심과 전문지식에 반하는 치료방법을 의료인에게 요구하는 경우 등을 말한다.  
복지부가 추석 연휴가 본격 시작되는 15일 이러한 지침을 보낸 건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피로도가 높아진 응급실 의료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통령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본 지침의 목적은 폭행 및 부적절한 진료 요구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하고, 결국 필요한 진료를 즉시 받을 수 있게 하여 응급환자도 보호하는 것”이라며, “올바른 응급실 이용문화 정착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의료계에선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지침이 마련돼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정말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진작 지침을 내려줬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만취한 주취자가 수액을 놔달라며 응급실에 드러눕고, 심폐소생술을 하느라 정신없는 의사를 향해 경증 환자가 ‘내가 먼저 왔는데 왜 나부터 안 봐주냐’며 욕설을 하곤 한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