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안은 부서진 가전 도구 등 각종 쓰레기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폐가 사이 텃밭이 없었다면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좀 더 가다 보니 80대로 보이는 노인이 현관 앞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대문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으나 “(귀가) 안 들려”라며 손사래를 쳤다. 30여 분간 동네를 돌아다니다 처음 만난 이군우(74)씨는 “젊은이들이 다 떠나고 여기는 노인만 산다”고 말했다. 우영팔(79)씨는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떠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만 남았다”며 “겉이 멀쩡한 집도 집주인이 죽거나 자식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해 빈집으로 남은 게 많다”고 말했다.
부산의 합계 출산율은 1998년 1.3명 이하로 떨어진 이후 2023년 0.66명으로 서울(0.55명)에 이어 최저 수준이다. 고령인구는 2023년 22.6%로 특별·광역시 중 최고 수준이다. 청년인구도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수도권으로 이전한 부산 청년 인구는 전체 순유출의 54%인 10만1000명으로 나타났다.
부산 자치구 중 소멸위험도가 가장 높은 곳은 영도구다. 영도는 대한민국 조선 산업 발상지이자 1960~70년대 초반까지 대표적 조선산업 기지였다. 대형조선소와 수리조선소 등 각종 공장이 해안가를 따라 들어섰다. 이를 중심으로 배후 지역에 상업시설과 주거지 등도 조성됐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젊은 층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사실상 ‘노인과 빈집’만 가득한 쇠락한 도시로 전락한 것이다. 1978년 21만 4000여명이었던 인구는 10월 현재 10만 4661명까지 줄었다.
실제 지난 2일 오후 1시에 찾은 흰여울마을 일대는 평일인데도 국내외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 길 위에 이국적인 풍경을 가지고 있는 이 마을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골목길과 카페 등은 북적였다.
하지만 흰여울 마을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영선2동은 걷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요했다. 길가에 있는 가게는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거나 문이 닫혀 있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낡은 간판만이 이곳이 낚시점·시계수리점·식육점 등을 했던 가게라는 것을 보여줬다.
아파트 246가구 가운데 절반이 빈집
이곳에서 위쪽으로 20여m 떨어진 영선아파트는 1969년 270세대 규모로 지었지만, 현재 2~3채만 남고 모두 빈집이다. 아파트 외벽 발코니 바닥은 콘크리트가 절반이 부서진 채 허공에 매달려 있어 곧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바로 옆 영선 미니 아파트(1977년 준공)도 246세대 가운데 절반 정도가 빈집이다. 유영애(67·여) 영선2동 10통장은 “예전에는 집 근처에 병원과 약국도 있고, 조그마한 재래시장도 있었는데 지금은 인구가 줄면서 다 사라져 차를 타고 도심지까지 나가야 한다”며 “흰여울 마을이 조성돼 낮에는 그래도 사람이 있지만, 원주민에게는 소음과 쓰레기만 주지 큰 도움이 되지 않고 밤엔 더 적막하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로 영도구 청학·봉래·남항시장 등 상설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날 오후 4시에 찾아간 청학시장은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고, 가게 주인만 멍하니 밖을 쳐다보거나 TV를 보고 있었다. 101개 점포 중 41곳이 문을 닫아 이곳이 상설시장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튀김 가게를 운영하는 정광순(77·여)씨는 “손님이 없으니 2~3년 전부터 하나둘 문을 닫고 나간 뒤에 아무도 안 들어와 저리 비어있다”며 “주말·평일 할 것 없이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고 마수도 못할 때도 잦다”고 말했다. 건어물 가게 주인 김모(67)씨는 “수십만 원 월세 내기도 힘든 실정이어서 나도 내년 설까지만 하고 그만둘까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위원은 “저출생과 고령화, 수도권 인구 유출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는 중앙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며 “이런 큰 밑그림 속에서 자치단체가 산업·교육·주거·복지·문화를 연계하는 전략을 내놓지 않으면 생색내기나 구색맞추기로 전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