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협은 5일 오전 상임이사회를 연 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병협은 "이번(계엄) 사태를 통해 드러난 정부의 왜곡된 시각과 폭력적 행태에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면서 "의료인·의료기관이 존중받고 합리적 논의가 가능해질 때까지 의개특위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병협 관계자는 "시국이 시국인 만큼 의개특위 참여를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병협은 지난 3일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에 들어간 '미복귀 전공의 처단' 표현을 문제 삼았다. 포고령 5조는 ‘전공의 포함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명시했다. 병협은 "사실을 왜곡했을 뿐 아니라 전공의를 마치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처단’하겠다는 표현을 쓴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면서 "국민 건강만을 위해 살아온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인들의 명예와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줬다"고 밝혔다.
병협의 이탈 움직임은 앞서 4일부터 나타났다. 의개특위에 병협 추천 몫으로 참여해온 신응진 순천향대 중앙의료원 특임원장 등이 특위 위원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신응진 위원은 "지금 같은 비상식적 상황에서 의료대계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병협은 의료 공급자·수요자·전문가·정부위원으로 구성된 의개특위에 들어간 사실상 유일한 의료계 단체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의개특위는 "병협이 참여 중단 입장을 밝힌 걸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의료계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개혁 방안을 마련해 가겠다. 향후 특위 논의는 각계 의견 등을 충분히 감안해서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병협이 이탈하면서 사실상 의개특위의 한 축이 무너지게 됐다. 실제로 특위 회의 일정은 계엄 사태 이후 줄줄이 차질을 빚고 있다. 4일 열릴 예정이던 필수의료·공정보상 전문위원회 회의는 무기한 연기됐다. 5일 열려던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도 다음 주로 미뤄졌다. 공청회를 거쳐 이달 말 발표 예정인 비급여·실손보험 개선 등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도 계획표대로 나올지 미지수다.
시민·환자단체 등에선 힘들게 이어진 의료개혁 논의가 멈출까 봐 우려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다음 주로 미뤄진 전문위원회 회의도 제때 이뤄질지 모르겠다"면서 "그나마 병협 등이 참여해오면서 의개특위를 지금까지 끌고 왔는데, 계엄 사태로 인해 연내 2차 실행방안까지 마무리하기 쉽지 않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