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사례 보면 '소비 위축' 불가피…침체의 골 더 깊어진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과거 유사 사례(노무현ㆍ박근혜 탄핵 정국)에 비춰 보면 소비 심리 위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정국이 시작된 2016년 10월부터 소비 지표는 낮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2016년 4분기 소매판매액(불변) 지수는 전년 동기보다 2.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해 1분기(4.7%)·2분기(5.5%)·3분기(3.2%)에서 큰 폭으로 둔화한 것이다.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되면서 소비 지표는 더 꺾였다. 2017년 1~2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1%대 증가율로 추락했다. 2016년 3%대를 유지했던 국내총생산(GDP) 민간소비 증가율도 탄핵정국에 들어선 4분기부터 1%대로 떨어졌다.

2004년 3∼5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부터 기각까지 기간에도 소비심리는 위축됐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2004년 1분기(-0.5%)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4분기에 들어서면서 1%대를 회복했다.

경제적 혼돈은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면서 영세 자영업자ㆍ소상공인의 어려움이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과거 두 차례 사례에서 소비 심리 위축은 실질적인 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다”며 “이번에도 소비 심리 위축은 불가피하고 소비 위축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소비 위축까지 실현되면 내수 침체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장기 불황으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번에는 '질서있는 퇴진'에 방점을 둔 여당과 '윤 대통령의 탄핵'을 밀어붙이는 야당간의 충돌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두차례의 탄핵 정국 때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 오래,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문제는 과거 사례와 달리 현재 한국 경제가 불황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 때인 2004년 경제성장률은 5.2%로 전년(3.1%)보다 크게 개선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가 이뤄진 2016년엔 2.9%로 전년(2.8%)보다 소폭 올랐고, 헌재가 탄핵을 결정한 해인 2017년엔 3.2%로 더 상승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단기적 충격을 주는 데 그친 반면,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안정화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수출이 호조세를 보인 덕분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지금은 반도체 경기 하락, 미국 관세 인상 충격파, 수출 둔화 조짐 등 장애물이 산적하다. 가뜩이나 소매판매지수가 10개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이는 등 내수 경기 침체한 상황에서, 골을 더욱 깊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ㆍ암로)는 6일 ‘2024 한국 연례협의’ 결과를 발표하며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1.9%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씨티은행도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2%포인트 낮춘 1.6%로 제시했다.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한 8개 IB(투자은행)의 평균치는 지난달 말 기준 1.8%로, 한 달 전보다 0.2%포인트 하락했다. 이번 전망에는 계엄 사태 후폭풍과 등이 반영되지 않았는데도, 한국이 내년 잠재성장률(2%)을 밑도는 성장을 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5일(현지시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인터뷰 기사를 보도하면서 “한국 내 정치 위기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무역 상대국에 대한) 관세 부과 공약과 관련해 한국이 민감한 시기에 접어들었을 때 발생했다”며 “이로 인해 한국과 같은 수출 의존 국가들은 보호무역주의에 취약해졌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차기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폭탄’ 공약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수출을 중심으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유사 사건 때보다 한국 경제의 산업경쟁력 등 기초체력이 약화해 있는 점, 내년도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은 시점에 사태가 터져 예산안 처리 지연 가능성이 더욱 커져 경제 성장률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점도 악조건”이라고 우려했다. 안 교수는 “어떤 방향으로든 최대한 빨리 탄핵 정국을 수습해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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