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들이 2024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다’라는 뜻의 도량발호(跳梁跋扈)를 꼽았다. “지도자가 국민의 삶을 위해 써야 할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다.
교수들 “권력자와 주변 무리가 성찰하지 않는다”
9일 교수신문은 전국 대학교수 1086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도량발호가 450표(41.4%)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도량발호를 추천한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자성어가 이르는 행태가) 권력자가 제멋대로 행동하며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밟고,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번 설문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있기 전날인 지난 2일까지 온라인 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을 통해 이메일 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교수 20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단으로부터 추천받은 사자성어 19개 중 교수신문 예비심사단이 추린 5개를 대상으로 설문이 이뤄졌다.
도량발호를 선택한 교수들은 대통령 부부의 국정농단 의혹과 친인척 보호, 정부·기관장의 권력 남용, 검찰 독재, 굴욕적인 외교, 경제에 대한 몰이해, 명태균·도술인 등 사인에 의한 나라의 분열 등을 이유로 언급했다.
비상계엄 이후로 교수들의 문제의식은 더 커진 모습이다. 한 정치학 교수는 교수신문에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가지고, 요건에 맞지 않는 비상계엄을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선포했다”고 비판했다. 다른 자연계열 교수는 “지식인 수천 명의 시국선언이 이어질 만큼 혼란한 시국에도 권력자와 주변 무리는 성찰의 기색이 없다”라고 꼬집었다.
2위 ‘부끄러움 모른다’, 3위 ‘유식한 척 나라를 어지럽힌다’
이어 3위엔 201표(18.5%)를 얻은 석서위려(碩鼠危旅)가 선정됐다.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의미다. 이를 추천한 이형진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온 나라가 자신이 똑똑하다고 굳건히 믿는 지도자들 때문에 끊임없는 논란과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는 안타까움과 좌절감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4위에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으로, 혹독한 정치의 폐가 큼을 이르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5위에는 ‘기본이 바로 서야 나아갈 길이 생긴다’는 말인 본립도생(本立道生)이 꼽혔다.
교수신문은 매년 전국 교수 설문조사를 통해 그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라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가 꼽혔다. 2022년에는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 2021년에는 ‘도둑을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되다’는 뜻의 묘서동처(猫鼠同處)가 선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