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엔비디아에 반독점 화살…SK하이닉스에도 달았던 그 조건

미국의 대중 제재 강화로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이 미국 엔비디아에 대해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조사에 착수하며 새 국면을 맞고 있다.  

10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 직속 기구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엔비디아가 2020년 이스라엘 반도체 업체 멜라녹스 인수 당시 약속했던 조건을 지키지 않아 중국의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조사에 나섰다. 

당시 엔비디아는 데이터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약 8조5000억원을 들여 인수를 성사시켰고,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는 이를 ‘홈런 딜’이라고도 불렀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과 달리 중국은 시간을 끌다 이 인수를 승인했는데 조건을 붙였다. 멜라녹스가 신제품 정보를 엔비디아에 제공한 뒤 90일 내에 경쟁사에도 제공하고, 중국 고객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 7가지(2가지는 기밀) 조건이다. 

중국 측은 엔비디아의 구체적인 위반 사항과 인수 4년이 지난 시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 등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이와 관련 “엔비디아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차별 없는 기준으로 중국 고객에게 관련 제품을 계속 공급하고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멜라녹스 장비를 묶어 파는 행위를 삼가겠다고 했었다”라며 “그러나 규제 기관은 엔비디아가 2022년부터 중국 시장에 대한 GPU 공급을 반복적으로 제한해 약속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가 지난 3월 18일 미국에서 열린 AI 콘퍼런스 GTC2024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엔비디아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가 지난 3월 18일 미국에서 열린 AI 콘퍼런스 GTC2024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무리한 인수 조건이었나 

중국 정부는 2021년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솔리다임)를 인수할 때도 ‘제3의 경쟁사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를 두고 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의 자립을 위해 한국·미국 반도체 기업을 지렛대로 삼으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당시 승인 조건은) 중국 시장에 신규 진입하려는 기업들을 (SK와 솔리다임이) 지원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이었다고 안다 ”라며 “그 이후 낸드 업황이 좋지 않았고, 중국도 YTM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란 자국 낸드 기업이 있기 때문에 승인 조건에 그닥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라고 전했다. 
중국의 반독점법 조사는 2013년 미국 퀄컴을 대상으로 벌인 이후 10여 년 만이다. 당시 중국은 퀄컴의 특허권자 지위 남용을 문제 삼아 1조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미국과 중국 국기. AP=연합뉴스

미국과 중국 국기. AP=연합뉴스

 

반격 더 세질까

이번 조치는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는 중 나온 것이라는 점에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갈륨·게르마늄 등 반도체 핵심 광물에 대한 대미 수출 금지 조치를 발표한 지 일주일 만에 또 다른 카드를 꺼내 압박에 나선 것이란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장 가치 있는 미국 기업(엔비디아)을 표적으로 삼아 중국의 보복 능력을 보여주고 미국의 추가 행동을 억제하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이런 대응이 자칫 중국에도 역풍이 될 수 있으므로 중국이 전선을 계속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미국의 첨단 산업 트레이드마크 격이니 겨냥했겠지만, 이런 식으로 사업을 방해해 엔비디아마저 중국에 등 돌리면 미중 간 AI 반도체 경쟁에서 중국이 오히려 발이 묶일 수 있다”라고 했다.  

엔비디아는 미·중 갈등에 휘말려온 대표적 기업이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재로 엔비디아는 고사양 칩 수출 길이 막히자 중국 전용 칩을 내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1년간 엔비디아 매출의 17%가 중국에서 나왔는데, 이는 2년 전(26%)보다 크게 하락한 것이다. 미·중간 힘겨루기에 타깃이 된 기업은 더 있다. 중국은 최근 인텔을 겨냥해서도 CPU(중앙처리장치) 보안 위험을 거론, 관련 조사에 나설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난해에는 마이크론에 대해 자국의 사이버 보안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제품 구매 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번 반독점 조사가 엔비디아의 중국 내 사업에 미칠 단기적 영향은 크지 않을 거란 게 업계 전망이다. 이미 엔비디아가 중국에 최신 칩을 팔지 않는 상황이라서다. 미·중간 갈등이 장기화함에 따라 국내 기업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제재는 미국과 중국이 주고 받고 있는 것이라 당장의 큰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중국 정부도 이런 보복 카드를 계속 쓰는 것이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