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는 “초면이었지만 집회 현장에서 국회의 표결 결과를 기다리며 자유발언 주제에 대해 나눈 이런저런 정치 관련 대화가 너무 잘 통했다”며 “함께 구호를 외치면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 느껴져서 호감도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몰린 인파 속에서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모습에 든든했고, 이 남자라면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계엄령 선포가 데이트 풍속도까지 바꾸고 있다. 젊은 연인들은 집회 광장을 데이트 장소로 정하거나 첫 만남인 소개팅 자리에서 계엄령에 대해 대화하며 정치적 성향, 사회 이슈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인하는 등 남녀 간 가급적 피해야 할 대화 주제 1위인 ‘정치’가 단골 대화거리로 떠오른 모습이다.
이는 미혼남녀의 절반 이상이 ‘소개팅에서 자신의 정치 성향과 다른 사람과는 소개팅을 피하겠다’고 답한 8년 전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조사 결과에 배치되는 현상이다. 당시 조사에선 ‘정치’는 남녀가 소개팅에서 기피하는 대화 주제로 남녀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었다. 최근 소개팅 등 이성 교제·만남 주선 애플리케이션에선 정치 성향을 보수·중도·진보·무관심으로 나눠 묻기도 한다.
작년에 결혼한 신혼인 김모(31)씨는 “여태껏 허심탄회하게 아내와 정치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사태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치색을 공유했다”며 “혼란스러운 시국 안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박모(30)씨는 “중요한 순간에 주말 국회 앞 현장에 꼭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남자친구와 같이 서울로 올라갔다”며 “응원봉을 들고 나서니 연말 콘서트장에 온 기분이 들어 재밌었다”고 했다.
X(옛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국회 앞 집회 장소를 MZ들의 이색 데이트 코스로 추천한다”, “촛불을 들고나온 연인을 대상으로 한 의미 있는 이벤트를 연다” 등 연인을 대상으로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말에 소개팅에 나선다는 한 시민이 올린 “모든 이슈를 계엄령이 집어삼켜 버렸는데,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글에는 “집회 같이 가자고 제안하라"는 조언성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반면 계엄령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의견 충돌로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엔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당일 “남자친구에게 ‘어떡하냐’며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내자 ‘너 빨갱이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헤어져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된다” 등의 고민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거나 예민한 이슈다 보니 서로 대화하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번 계엄에 따른 탄핵 정국 이슈의 경우 계엄이 잘못됐다는 것에 확실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그러다 보니 스스럼없이 의견을 표출하게 된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집회장이 역사적 현장이면서도 평화롭고 흥겨운 분위기로 진행되다 보니 데이트 코스의 일종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