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에 앞으론 마음 편히 못 가게 될까 봐 생각하다가 슬퍼졌습니다.”
일본 게이오대 2학년에 재학 중인 A씨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일본 10·20대는 A씨처럼 어릴 때부터 K팝 등 한국 문화를 즐긴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 1월 발표된 일본 내각부의 여론조사 결과 18~29세 중 ‘한국에 친근감을 느낀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이 66.2%에 이를 정도랍니다. 다른 연령대보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세대죠.
기자는 일본의 10·20대가 한국의 12·3 사태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 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의 도움을 얻어 지난 6일부터 14일까지 시즈오카 현립대(43명) 및 그가 강의를 맡고 있는 게이오대 학생들(45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아울러 생각과 의견을 설문지에 자유롭게 적어달라고 요청했고요.
‘이번 사태로 인해 본인이 알고 있던 한국과 다르다고 당황하거나, 여행 계획을 취소했나’는 물음에 응답 학생 중 절반에 가까운 이들(43명·48.9%)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상당수는 이번 계엄 사태가 “(한국은) 일본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매우 놀랐다”고 밝혔습니다.
기자는 설문에 응답한 학생 중 4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글 머리에 소개한 A씨, 시즈오카 현립대 4학년인 B씨, 게이오대 2학년인 C씨,게이오대 1학년인 D씨입니다. A·B·C씨는 여성, D씨는 남성입니다. 모두 대학 입학전부터 K팝이나 한류 드라마를 즐겼던 학생들이더군요.
“대통령 한마디에 군 출동…충격”
4명의 대학생 모두 계엄 사태 이전까지 윤 대통령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인물로 인식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B씨는 윤 대통령에 대해 “일본과의 관계를 잘 해왔었는데 왜 비상계엄과 같은 ‘제멋대로의 행동’을 했는지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대학 입학 후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는 D씨는 “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실망했다”며 “계엄령이라는 말을 들으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마치 (수업에서 들은) 5·18 시절로 돌아간다는 충격이 컸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또 “일본과 한국은 문화적으로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와 같은 세대의 젊은 남성이 일반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하더군요.
C씨는 한국에 친구가 10여명 있다고 해요. 지금까지 친구들을 통해 들은 한국은 안정적인 이미지여서, 이번 사태에 매우 놀랐다고 합니다. C씨는 “군대와 시민이 대치하는 상황은 중동 같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자위대와 시민이 대치하는 장면은 본 적이 없어서 (계엄 사태는) 충격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주로 유튜브를 통해 정치 상황 정보를 접하는 그는 계엄 선포 직후 한국인 유튜버가 “계엄으로 인해 K팝 아이돌의 입출국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마침 12일부터 K팝 콘서트를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취소되면 어쩌냐 걱정이 됐다”고 합니다.
“한국엔 반일, 일본엔 혐한 퍼질라 걱정”
인터뷰에선 계엄 사태 이후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에 대한 생소함, 불안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B씨는 “일본에서 대규모 시위를 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고 했습니다.
또한 “다음 정권은 반일 성향이 강할 것 같다”는 걱정도 컸습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관련 뉴스를 집중 보도하고 있는 일본 언론에선 차기 대통령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력하다고 전하면서 그가 집권하면 한일 관계가 냉각될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부 매체는 이 대표를 ‘반일당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A씨는 “(한국의) 시위에서 반일을 외치는 사람을 곳곳에서 볼 것 같다. 거기에 있다가 (내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무서워서 여행 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 세번 다녀온 적이 있는 C씨는 “일면식도 없는 한 한국인 여성이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등 싫은 경험을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반일 정권이 들어서면 길을 걷다가 차별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D씨는 과거사 문제 등에서 양국간 갈등이 한층 심해질것으로 예상하면서 “앞으로 양국 SNS에서 반일과 혐한이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하더군요.
“정치 참여 필요성 깨달았다”
운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맞서 시민들이 즉시 국회에 모인 모습에 대해선 “한국이 이뤄낸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D씨)는 등의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습니다.
특히 B씨는 한국 시민들의 모습에서 감명받아 선거와 정치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밝히더군요. 그는 “제 한 표로 뭔가를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해 단 한 번도 선거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관련 영상을 보고 많은 사람이 모이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한국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B씨는 내년 7월 예정인 참의원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각 정당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라고 해요.
그는 일본 학생 사이에서 나타나는 대규모 시위에 대한 두려움은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에 차이점에서 오는 불안감”으로 풀이했습니다. 또한 “‘대통령이 매우 불안정한 일을 일으키는 나라’라는 시선이 젊은이들에게 형성되면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함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며 고무적인 요소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고하리 교수는 이번 사태가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양국의 다양한 교류행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우려했습니다. 양국 교류가 축소되지 않기 위해 정치인들을 비롯한 어른들의 노력이 더욱 중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