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로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제공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을 모의한 내란 혐의의 수괴로 윤석열 대통령을 지목하는 증언·진술이 점차 두터워지고 있다. 계엄 선포 직후 국회 출입을 통제한 경찰과 국회 본회의장 무력 점거 및 국회의원 체포를 시도한 군 모두 지휘부 차원에서 윤 대통령에게 직접 지시받은 사실을 실토하면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국회의원 체포·구금을 시도하고, 계엄군을 투입해 헌법기관인 국회의 의결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것은 내란죄의 핵심 구성요건인 ‘국헌 문란’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국군방첩사령관·육군특수전사령관·수도방위사령관 등 군 지휘관들의 국회 증언과 검찰 진술 내용 등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직후 국회 장악을 위해 투입된 군·경 지휘관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를 내렸다. “지금 상황이 어떠냐”며 군 병력의 국회 진입 상황을 직접 챙기는가 하면 계엄군과 대치하던 국회 보좌진, 시민 등이 국회 본관 문을 걸어 잠그자 문을 부수라는 명령을 하달하는 식이었다.
尹 "문 부수고 들어가라" 직접 의원들 체포 지시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지난 13일 검찰 소환 조사에서 계엄 선포 당시 윤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사실과 함께 하달받은 구체적 지시 내용도 진술했다. 곽 사령관은 특히 경찰의 국회 출입 통제가 무산되고 계엄군의 국회 본회의장 진입이 막힌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며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지난 14일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과 공모해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을 일으킨 혐의(내란)로 곽 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고개를 숙인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김성룡 기자
곽 사령관의 이같은 진술 내용은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해 “윤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해제를 위한)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한 내용과도 일치한다. 김 사령관은 계엄 작전을 실행한 사령관 중 계엄 선포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고 공개한 유일한 지휘관이기도 하다. “지난 1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련 3곳, 민주당사, 여론조사 꽃 등 6곳을 확보하라는 임무를 받았다”는 게 김 사령관의 증언 내용이다.
지난 13일 검찰에 체포된 이진우 수방사령관도 “국회로 출동했을 때 대통령으로부터 ‘끌어내라’는 지시를 2차례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 사령관은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전화를 받아 당시 상황을 보고하고 구체적인 지시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특히 윤 대통령은 수방사 병력이 국회의원 체포에 어려움을 겪으며 계엄 해제 안건이 본회의에서 의결될 상황에 놓이자 “왜 못 끌어내느냐”며 질책했다는 게 이 사령관의 주장이다. 검찰은 15일 이 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지난 3일 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체포해 계엄 해제 의결을 막는 임무에 군 병력뿐 아니라 경찰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지난 13일 법률대리인인 노정환 변호사를 통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일 전화로 ‘의원들 다 잡아들여. 계엄법 위반이니 체포해’라고 직접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다만 조 청장은 윤 대통령의 이같은 지시에 대해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해 참모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내란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조 청장은 지난 13일 증거인멸 우려 등의 사유로 구속됐다.
특전·수방사령관과 조 청장의 이같은 진술은 “질서 유지에 필요한 소수의 병력만 투입했다”는 윤 대통령의 지난 12일 담화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계엄 선포는) 작금의 위기 상황을 국민들께 알리고 호소하는 비상조치”라며 “(군 병력을 국회에 투입한 이유는) 질서 유지를 하기 위한 것이지 국회를 해산시키거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檢 막판 진술 다지기…尹 2차 소환 거부시 강제수사
검찰은 계엄선포 이후 국회·선관위 진입 상황을 재구성하고 당시 지휘 계통을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각 사령부 지휘관을 비롯해 검찰에 소환된 10여명의 장성급·영관급 인사 대부분은 “계엄 선포 사실은 대통령 담화를 보고 알게 됐다”며 사전에 계엄을 모의했다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 11일 구속된 이후 검찰 조사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다만 이들 대부분은 군 병력을 국회 등에 투입한 배경으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지목했다. 김 전 장관 역시 계엄 포고령에 대해 “내가 직접 작성했고 그 내용은 대통령과 상의했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했다. 검찰은 윤 대통령에 대해서도 이날 오전 10시까지를 시한으로 1차 소환 통보했으나 불출석함에 따라 2차 소환 통보를 할 예정이다. 2차 소환도 거부할 경우 통상 절차에 따라 강제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윤 대통령 소환에 앞서 ‘진술 다지기’에 나선 검찰은 김용현 전 장관을 이틀 연속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다만 김 전 장관은 내란임무종사 혐의로 구속된 이후 검찰 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지난 14일 “특정 정당과 국회의원이 불법적으로 수사에 개입했고, 검찰이 특정 정당의 정치적 수사 도구로 전락했다”며 “검찰에 대해 불법 수사 중단과 김 전 장관을 포함해 구속된 피의자들 전원에 대한 구속 취소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