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가족'은 승려가 된 아들(이승기) 때문에 대가 끊긴 만둣집 ‘평만옥’ 사장(김윤석)에게 세상 본 적 없던 귀여운 손주들이 찾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기막힌 동거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천만영화 ‘변호인’(2013)의 양우석 감독이 가족 코미디 ‘대가족’(11일 개봉)으로 돌아왔다.
‘변호인’ ‘강철비’ 1‧2편(2017‧2020) 등 영화에 더해 최근 뮤지컬로도 제작된 장편소설 『면면면』(2021)까지 감독이자 작가로서 정치‧시대 소재를 주로 다룬 그가 따뜻한 웃음 사냥에 나섰다.
승려가 된 외아들 문석(이승기) 탓에 대가 끊긴 노포만둣집 사장 무옥(김윤석)에게 문석의 친자식이라는 어린 남매 민국(김시우)‧민선(윤채나)이 찾아오며 소동이 벌어진다. 알고 보니 출가 전 의대생이던 문석이 정자 기증을 517번이나 해 태어난 자식이 400여명에 이른다.
6‧25 전쟁고아로 살아남은 무옥은 악착같이 모은 수백억원대 자산을 물려줄 핏줄에 집착해왔다. 그런 무옥이 손주들의 복잡한 속사정에 뛰어들며 변화하는 과정이, 엘리트 승려 문석과 큰스님(이순재)의 불교철학과 어우러진다.
“자식에게 부모는 우주요, 부모에게 자식은 신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능한 신이나 간절히 평생을 섬기는 신” “똥에도 불성이 있다” 등이 명대사로 꼽힌다. 똥을 덮기 위해 쌓은 돌무더기가 사람들의 무수한 소원을 담은 돌탑 밭이 됐더라는 한 승려의 일화는, 뜻밖의 계기로 인해 가족이 돼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겹쳐진다. 양 감독이 지난 반세기 한국에서 격변한 가족의 형태와 의미, 관계에 주목해 각본까지 직접 썼다.
"마을잔치 같이 훈훈한 영화" 4050 입소문
영화 '대가족'에서 김윤석은 오랜만에 날카로운 캐릭터, 장르 연기를 벗고 코미디 호흡을 선보였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15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까지 ‘대가족’ 누적 관객 수는 15만명으로, 탄핵 정국 속에 개봉한 탓에 첫 주 흥행 성적은 3~5위로 저조한 편.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들은 호평(CGV 예매앱 실관람평 100% 만점에 95%, 메가박스 10점 만점에 8.6점)을 쏟아낸다. “연말연시 가족의 의미를 일깨우는 영화” “만둣국처럼 따뜻하고 마을잔치 같이 훈훈하다” “부모님과 웃고 울며 봤다” 등이다.
이런 입소문은 40~50세대가 중심이다. CGV 예매앱 분석에 따르면, ‘대가족’의 관객 연령 비는 50대 이상(34%)이 가장 많고, 이어 40대(31%), 30대(22%), 20대(11%) 순이다.
영화 '대가족에서 이승기(오른쪽 두번째)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엘리트 승려 문석 역을 맡았다. 출가 전 자신의 정자 기증으로 인해 수백명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문석을 비롯해 유교적 전통 가치를 지키려는 아버지 무옥, 민국과 민선 남매를 보살피는 수녀들까지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한 가족을 꾸리는 과정 속에 어우러진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젊은 세대 사이에선 “신파적이고 억지스럽다” “영화가 올드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시대 배경을 20세기와 21세기가 교차하는 2000년으로 설정한 데다, 서울 종로 빌딩 숲 한복판에 고집스레 자리한 한옥 만둣집, 전통 방식의 제사 풍경 등이 잇따라서다.
재혼‧입양 등 혈연을 뛰어넘은 가족을 그리지만, 그렇게 탄생한 가족이 ‘가족의 가치’를 전통적 풍습을 통해 재확인하는 장면이 구시대적이란 지적도 있다.
양우석 "가족을 가족한테만 책임지우는 시대 지났다"
영화 '대가족'에선 주연 배우 김윤석과 함께 아역 배우 김시우, 윤채나의 자연스러운 연기 호흡이 칭찬 받는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 전 언론 간담회에서 양 감독은 “가족을 가족 구성원에게 알아서 책임지라고 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가족을 구성하기가 힘든 시대가 됐다”면서 “가족을 만들고 또 그 가족이 확장되고 행복해지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자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결국 전통적 방식의 가족에 대한 이념을 수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서 “감각보다 이성적인 논리로 전개한 코미디”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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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가족'에서 주인공 무옥이 만둣집을 한다는 설정은 설 명절음식으로 전해온 만두국이 가족과 혈연에을 중시하는 무옥 캐릭터를 잘 보여줄거라는 양우석 감독의 판단에서 설정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윤석의 코미디 연기는 호평 일색이다. 넷플릭스 스릴러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8월 공개), 이순신 장군으로 분한 사극 ‘노량’(2022), 해외 내전 상황에 휘말린 ‘모가디슈’(2021) 등 김윤석이 전작들의 무게감을 벗어던졌다. 영화 ‘남쪽으로 튀어’(2013), ‘완득이’(2011) 속 소탈한 모습도 엿보인다.
특히 어른들을 웃기고 울리는 손주 역 배우들과의 호흡이 빛난다. 아역 김시우‧윤채나는 극중 무옥과 여동생의 어린 시절 역할도 겸했다. 간담회에서 김윤석은 두 배우에 대해 “역할에 대한 이해도 빠르고 영리하다”고 칭찬했다. 공동 주연 이승기는 스크린 데뷔작 ‘오늘의 연애’(2015), ‘궁합’(2018)에 이어 6년 만의 3번째 영화에서 삭발을 감행했다.
‘대가족’에는 AI(인공지능) 기술도 사용됐다. 이승기의 노년 시절을 분장 대신 AI 기술로 표현했다. 또 큰스님 역의 배우 이순재 장면에도 촬영 당시 그의 건강상 이유로 출연 분량을 AI 기술로 보완했다. 당초 큰스님 역은 배우 오영수가 캐스팅됐지만, 강제추행 논란으로 하차하며 이순재가 합류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