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사거리 일대에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엔 20만명(경찰 비공식 추산)의 시민이 모였다.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여의도 집회 현장에서 위법 행위로 현행범 체포된 이는 한 명도 없었고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를 모두 경험한 박모(37)씨의 감회도 새로웠다. 박씨는 서울시청 앞에서 대규모 촛불시위가 있었던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의무경찰(의경)로 근무했다 이번 탄핵 촉구 집회에 일반 시민으로 참석했다. 박씨는 “16년 전 광우병 촛불 땐 경찰들에게 침을 뱉거나 발로 방패를 걷어차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축제처럼 집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김진주(35)씨는 “시민들에게 핫팩은 물론이고 귤, 에너지바 등 간식거리까지 계속 나눠 받았다”며 “윤 대통령은 폭력적인 계엄으로 충격을 줬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전 세계에 알리게 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집회 현장 주변 건물들도 화장실을 개방하며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국회의사당 바로 앞 한 상업용 건물 화장실에는 이날 오후 한때 시민 100여명이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건물 복도를 가득 메우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도 새치기나 시비 없이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집회가 끝난 후에도 시민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지고 온 쓰레기를 사용한 비닐봉지나 가방에 넣어 자리를 정리했다. 멈춘 국회의사당역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면서는 경찰 등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그리고 안전하게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외국인들은 새로운 집회·시위 문화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4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캐나다 출신의 잭 그린버그(25‧남)는 “지난 한 주 동안 이전 세대의 희생을 통해 세운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용기 낸 한국 시민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시위 참여 방식은 민주적이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인 샤파(24‧여)는 “좋아하는 가수의 응원 도구를 들고 흥겹게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이 몹시 흥미로웠다”며 “한국 시민들의 이런 시위 문화는 전 세계에 입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엑스(X)’ 등 SNS에서도 “한국 시민이 되고 싶다” “K팝에 이어 K집회도 수출하는 거냐” 등 반응이 뜨거웠다.
외신은 성숙한 시민의식에 주목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0일 “시민들이 시위에 들고나온 응원봉이 기존의 촛불을 대체하며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BBC는 “한국은 2년 전 이태원 참사로 치명적인 압사 사고를 겪어 이번 집회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고 했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차세대형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MZ세대가 집회·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떠오르며 새로운 집회·시위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5~10년간 점점 미래가 불확실해진 청년 세대가 이번 사태를 보며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정치적 각성이 일어나 집회·시위 주도 세력의 세대교체가 일어났다”며 “특히 아티스트, 즉 남을 위해 헌신하는 팬덤 문화가 민주주의 위기 극복이라는 목표와 결합해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집회·시위가 진행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