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공백 우려 불식" 자신하지만…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을 자처해 "정상 외교 공백에 대한 우려는 바이든 대통령과 한 권한대행 간 통화로 불식됐다"며 "권한대행 체제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가급적 이른 시일 내 (상황이) 정상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 전후로 방미 가능성에 대해선 "필요하다면 검토해봐야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전날 외교부 장관·차관·차관보는 각기 미국·일본·중국의 주한 대사 혹은 대사대리를 접촉해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외교 정책·기조는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탄핵안 인용 시 차기 대선까지 최장 240일 동안 정상외교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은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정상이 부재한 가운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추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등 주요 현안을 제대로 다루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아무리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이어받는다 해도 극단적 상황에서 대통령만 내릴 수 있는 안보 결단도 존재한다. 북한의 무인기 침투에 맞서 우리도 무인기를 북한에 보내는 식의 맞대응을 한다거나, 북한의 정찰 위성 발사에 맞서 남북 간 9·19 군사 합의를 효력정지하는 등의 결정은 대통령이 아니면 힘들다는 지적이다.
"관료 시스템, 의연히 돌아가야"
박 전 대통령의 직무 정지·탄핵 국면에서 외교수장으로서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까지 직을 수행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15일 중앙일보에 "정상 권한대행도 필요한 만큼의 정상 역할을 할수 있으며 권한대행 체제에서 외교가 무력할 것이라는 관측은 과도한 우려"라며 "외교 업무의 대부분은 외교장관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위축되지 말고 의연한 자세로 임하면 된다"고 말했다.
당시 출범했던 트럼프 1기 행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선 "본부와 주미 한국 대사관, 주요 총영사관을 중심으로 신 행정부를 샅샅이 접촉해 외교 동정과 대북 정책을 면밀히 파악하고 우리 입장을 장관 차원에서 구두와 문서로 선제적으로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선에선 능동적으로 대미 외교를 펼치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외교·안보, 통상 정책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美 신정부 상대 제대로 될까
윤 대통령의 탄핵 국면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맞물리게 됐다. 그러나 달라진 건 미국 신 행정부와 전방위로 네트워크를 쌓아야 할 국무위원 20명 중 과반(11명)이 이른바 '계엄 선포 국무회의'(3일)에 참석했다가 수사 선상에 오른 상황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한 권한대행은 내란죄 혐의로 고발된 피의자 신분이다. 사법의 영역은 별개라곤 하지만 이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 주요국 카운터파트와 협의 시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 때보다도 더 큰 폭의 불확실성을 예고하고 있다. 행정부 내 동맹주의자의 입지도 더 좁아졌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12일(현지 시간) CSIS 온라인 대담에서 전날 만났다는 트럼프의 전직 참모를 인용해 "트럼프의 첫 100일이 아니라 첫 100시간에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부터 북핵 문제, 방위비 분담금, 관세 및 경제안보 현안 등에 있어 미국의 정책에 급격히 달라질 텐데,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한국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8년 전엔 김정남 암살, ‘한반도 위기설’도
윤 대통령이 탄핵안 가결 전 최병혁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한 가운데 군은 현재 김선호 국방부 차관의 대행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지, 신임 장관이 부임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뒤숭숭한 분위기라고 한다. 한 군 관계자는 "무엇이 됐든 조속히 방향성이 결정돼 군사대비태세가 정상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시 군 지휘부가 뻥 뚫린 가운데 이런 공백을 노린 북한의 오판 가능성도 우려된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이었던 2017년 2월 북한은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을 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말레이시아에서 암살하는 등 돌발 행동을 이어갔다. 이후에도 북한의 6차 핵실험 설(실제론 2017년 9월에 감행), 트럼프의 대북 선제타격설, 4월 위기설(전쟁설) 등 한반도 안보 위기에 대한 우려는 끝없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