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지난 14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치 불확실성은 다소 줄었지만 한국 경제에 드리운 저성장 먹구름은 쉽게 걷히지 않고 있다. 계엄ㆍ탄핵 국면 이전 한국은행이 내놓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1.9%)가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15일 발표한 ‘비상계엄 이후 금융경제 영향 평가 및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과거 두 차례 탄핵 국면에선 경제정책이 정치와 분리되어 정상적으로 추진돼 경제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2004년과 2016년 두 차례 탄핵 당시보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 탄핵 국면과의 가장 큰 차이는 위기를 수습해야 할 ‘경제 리더십’에 흠집이 났다는 점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계엄사태를 사전에 알고도 막지 못한 책임론에 휩싸인 데다 수사를 받아야 하는 피의자 신분이다. 권한대행 2순위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계엄 직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도 리더십에 흠집이 나면서 주요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한 상태다. 다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5일 기자회견에서 한 총리에 대해선 '내란 공조'를 이유로 한 탄핵소추는 일단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탄핵 시기와 달리 현재 한국 경제는 트럼프 고관세 위협, 저성장 국면 등 대내외적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며 "적어도 경제나 외교가 안정될 때까지 '정치와 경제는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금융·외환시장의 걸림돌은 1400원대에 안착한 고환율(원화가치는 하락)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달러 강세가 지속하면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1400원대 환율이 이어질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고물가→고금리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식량자급률이 낮아 식품 원재료 등을 많이 수입하기 때문에 밀가루ㆍ치즈 등 각종 식품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밥상 물가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한은으로썬 경기 부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쓰기도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더욱이 과거 두 차례 탄핵 국면은 원화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2004년에는 수출 호조와 미국의 통화완화 기조로 원화가치는 오히려 상승세를 띠었다. 2016년에도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강달러 기조에 원화가 약세를 보이다 반도체 경기 호조 등에 힘입어 강세로 전환했다.
가장 심각한 건 소비 부진 등으로 실물 경제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점이다. 2004년은 중국의 고성장에 따른 수출 호조, 2016년엔 글로벌 반도체 경기 호조 등 대외 시장의 훈풍이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됐다. 이번엔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 예고, 중국의 저성장 등으로 교역 여건이 나빠진 데다 연말 대목을 앞두고 소비 심리도 위축된 상태다.
경제 심리를 보여주는 일별 뉴스심리지수(NSI)는 100 내외에서 등락하다 12월 들어 83.2로 크게 하락했다. 뉴스심리지수가 100보다 작으면 장기평균보다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또 한국신용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이달 2일부터 9일까지 전국 소상공인 외식업 사업장 신용카드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9% 감소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계엄 사태 여파로 주요 기관들의 한국 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면서 내년 1%대 성장은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며 “재정 조기 집행, 한은의 추가 금리 인하 등 과감한 재정·통화정책으로 내수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도 대내외 여건 변화를 언급하면서 이번 보고서에서 “지난 두 번의 사례에 비해 경제 상황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추경을 비롯해 주요 금융·경제 정책을 여·야·정 협의로 차질 없이 진행해 경제 시스템이 독립·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뢰를 줄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