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 대비 16.4원 내린(환율은 상승) 1451.9원에 마감했다. 개장 초반 1450원 초반대를 유지하다가 오전 10시께부터 1440원 후반대로 소폭 회복했으나 오후 3시께 다시 1450원대로 밀렸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가 앞으로 금리인하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전망에 달러가 강세를 보인 영향이 컸다. 여기에 원화와 동조성이 높은 엔화가 일본은행(BOJ)의 금리 동결로 약세를 보인 점,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이어진 점 등이 원화가치 하락을 부추겼다.
지난 9월30일 달러당 1307.8원을 기록한 원화가치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6일(현지시각) 미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1400원대까지 하락했다.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달러화 가치가 상승할 거란 관측 때문이다. 이후 지난 3일 윤석열 대통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터지면서 원화 가치는 낙폭을 키워가고 있다.
변동성이 커진 환율이 한국 경제를 더욱 무겁게 짓누르는 모양새다. 원화 약세는 수입 물가 상승을 초래해 민간 소비를 위축시킨다. 한국은행은 1430원대 환율이 유지될 경우 내년 소비자물가가 0.05%포인트 오를 것으로 추산했다. 생산 비용이 증가해 기업의 이익률이 떨어지는 등 기업 경영에도 불안 요인이다. 해외여행이나 유학에 필요한 비용 부담, 외화 부채 상환 부담 등도 늘어난다. 원화 가치 하락세가 급격하면 수출입 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낮춰 무역 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
환율이 불안 조짐을 보이자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기획재정부·한국은행은 올해 말까지 운영하기로 했던 국민연금공단과의 외환스왑 거래를 내년 말까지 연장하고, 거래 규모를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해외 자산 투자 등을 위해 시장에서 달러화를 사면 원화 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데, 외환당국이 보유 중인 달러화를 공급해주면서 원화 가치 하락을 막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권의 건전성과 유동성 여력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도입할 예정이던 스트레스 완충자본 규제 도입을 내년 하반기 이후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자본 확충 부담을 완화해주겠다는 이야기다. 이와 별도로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은행권에 “기업의 외화결제 및 외화대출 만기의 탄력적 조정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서 “변동성이 과도한 경우 시장 안정 조치를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행하겠다”며 진정에 나섰지만,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내년 1월 트럼프 2기 미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예고했던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를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 중국이 미국의 관세 인상에 대응할 목적으로 위안화 약세를 용인할 예정인 점도 원화 가치에 악재로 꼽힌다. 원화는 위안화 등락에 연동되는 경향이 있어서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저하도 원화 가치 하락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수출 증가율이 둔화하고 있다. 한국의 주요 산업 경쟁력이 속속 중국 등에 추월당하면서다.
전문가들은 이런 원화 가치 약세가 당분간 지속할 수 있다고 본다.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은 “국내 정치적 리스크가 해소되지도 않은 상황이라 단기적으로 미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레드라인인 1500원대까지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원화가치가 조만간 1460원대로 떨어질 수 있다”며 “ 국내외 이벤트나 발언 등 충격이 있을 때마다 환율이 크게 출렁이는 모습이 연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오늘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석 교수는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최대한 빨리 발표해서 시장 친화 정책 기조가 변함없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며 “국회에서 반도체특별법이나 인공지능특별법, 전력망확충특별법 등 산업계 발전에 도움될 수 있는 법안들을 신속하게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