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재직자 조건 상여금’도 통상임금 인정…기업 경영 '빨간불'

조희대 대법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선고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선고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에서 재직 여부나 특정 일수 이상 근무 조건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조건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기업 경영에 ‘경고등’이 켜졌다.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면서 향후 연간 6조8000억원의 추가 인건비 상승이 예측되는 데다 노동조합(노조)과의 임금 협상 과정에서 내홍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져서다.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근로자의 재직 여부나 근무 일수에 따라 조건부로 지급되는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통상임금이란 '소정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을 뜻한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재직자 조건 등이 있는 조건부 정기 상여금의 경우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는데 11년 만에 이를 뒤집은 것이다.  

판결 직후 재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당장 문제로 떠오른 건 인건비 부담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조건부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국내 기업 26.7%가 영향을 받고, 연간 6조7889억원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임금에 근거해 지급되는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연차 수당 등이 한 번에 오르기 때문이다.

경총은 “현장의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고 향후 소송 제기 등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정치적 혼란과 내수 부진, 수출 증가세 감소 등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데 예기치 못한 재무적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강석구 조사본부장 명의의 입장문에서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기적으론 향후 소송이나 임금 협상 과정에서 혼란이 불가피해질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간에는 ‘재직자 조건’ 등이 있기 때문에 임금 협상 시 노사가 여러 타협을 해왔는데 과거 합의가 다 무너지면서 새로운 분쟁이 유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박 교수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한국에서 ‘상여금’ 제도가 가진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상여금의 경우 근로 제공에 대한 대가 성격도 있지만 근로자에 대한 동기부여 성격, 그리고 장기 근로에 대한 보상 성격 등이 합쳐져 많게는 기본급의 600~700%까지 제공한다”며 “과거엔 이를 감안해 노사가 여러 조건을 달 수 있도록 유연하게 봤는데 이를 통상임금으로 묶어버린 것은 지나치게 기계적인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는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통상임금 확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높은 대기업에 돌아가는 구조라서다. 경총은 이번 판결로 증가하는 임금총액 전망액 중 47.7%에 해당하는 연간 3조2391억원이 전체 임금근로자의 5.1% 수준인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에게 집중될 것으로 분석했다. 1인당 임금은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가 연 361만6000원 증가하지만 29인 이하 사업장은 연 20만8000원 늘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노동계에선 환영의 의사를 밝혔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은 “실질적으로는 고정적 상여금임에도 불구하고 ‘재직 중’ 등의 이유로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아 많은 혼란이 있었다”며 “통상임금에 대한 혼란을 바로잡는 바람직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늦었지만 법문에 규정돼 있지도 않은 고정성 요건을 폐기해 해석상 논란을 종식시킨 판결을 환영한다”면서도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소급적용 하지 못하도록 한 부분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더 이상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입법을 통해 ‘통상임금’의 정의가 확립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의 정의가 명시되지 않는 한 혼란이 이어질 것”이라며 “이번에 11년 만에 해석이 바뀌었듯 언제든 또다시 뒤집어질 수 있다. 국회에서 통상임금 규정을 명확히 규정해 원천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