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 멘토 법륜 스님
16일 서울 서초동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법륜 스님(71)을 만났다. 필리핀에서 막 귀국한 참이었다. 오지 마을에 학교를 10개나 지었다. 지난 20년간 필리핀 민다나오에서만 72개 마을에 학교를 세웠다. 지난 10월에는 시리아에서도 지진으로 무너진 학교를 다시 지었다. 그곳의 무슬림을 불교 신자로 바꾸겠다는 선교 목적도 없었다. 순수한 인류애였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라고 묻자 법륜 스님은 “목 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면 되지. 거기에 종교가 왜 필요한데?”라고 되물었다.
법륜 스님은 왜 출가를 하셨나.
“나는 출가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고1 때까지 그랬다. 나의 꿈은 과학자였다. 과학 중에서도 물리학이나 천문학을 하고 싶었다.”
물리학이나 천문학. 무엇이 궁금했나.
“당시 『학생과학』이란 잡지를 매달 보았다. 우주가 뭔가, 물질의 근원은 뭔가. 우주의 크기는 얼마이고, 저 우주 너머에도 생명이 있을까. 어릴 적부터 궁금증이 많았다. 동네에서 점쟁이가 신수 봐주면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꼬치꼬치 따지고 물었다. 무당이 굿할 때 대나무를 든 사람이 부들부들 떨면, 그게 왜 떨리는지 물었다. 어린애가 왜 그런 걸 자꾸 묻느냐고 핀잔도 많이 들었다.”
법륜 스님은 초등학생 때 동네 교회에 다녔다. “자꾸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고 하더라. 어떡하면 그게 되느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불신자는 지옥 간다고 하더라. 궁금해서 묻는데 왜 지옥 갈까? 그래서 열 살 때쯤 교회를 그만 다녔다.” 중학생 때는 절에 갔다. “부처님이 옆구리로 태어났고, 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고 하더라. 스님에게 ‘그렇게 태어나는 그런 사람 직접 본 적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런데 송아지는 태어날 때 바로 섰다. 나면 바로 서지 않나. 어미소는 서서 송아지를 낳는다. 경전을 찾아보니 마야 부인도 나뭇가지를 잡고 선 채로 부처님을 낳았다. 어린 마음에 그래서 가능한가, 생각하기도 했다. 뭐든지 ‘왜 그런가’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출가의 방아쇠는 무엇이었나.
“경주에서 중ㆍ고등학교에 다녔다. 학교 바로 옆에 분황사란 절이 있었다. 시험 좀 잘 봤으면 하는 마음에 법당에서 기도도 했다. 하루는 법당에서 나오는데 주지 스님이 불렀다. 시험기간이라 시간을 아끼자는 생각에 ‘제가 지금 바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너 어디서 왔는데?’하고 물으셨다. 도서관이요, 했더니 ‘그 전에는?’하고 물었다. ‘집이요’했더니, 그전에는? 그렇게 자꾸 답하다가 결국 ‘어머니 뱃속이요’까지 나왔다. 스님은 ‘그 전에는?’하고 물었다. 나는 말문이 꽉 막혀 버렸다.”
거기가 끝인가.
“아니다. 스님은 ‘너 어디로 가니?’ 물으셨다. ‘집이요’ 했더니, 그 다음에는? 그렇게 계속 답하다가 결국 ‘죽지요’까지 갔다. 스님은 ‘그 다음에 어디로 가니?’하고 물었다. 나는 또 말문이 꽉 막혔다. “몰라요.” 그러자 스님이 벽력같이 고함을 쳤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 놈이 바쁘기는 왜 바빠?” 그래서 물었다. 그거 아는 사람 있습니까. 있지. 어떡하면 그걸 압니까. 스님은 ‘절에 들어오면 안다’고 하셨다.” 그 주지 스님이 법륜 스님의 은사인 불심 도문 스님이다.
돌아보면 어떤가. 과학의 물음과 종교의 물음. 둘은 닮았나, 아니면 다른가.
“불교에서는 화두(話頭)를 참구(參究ㆍ참선하며 진리를 탐구함)한다고 말한다. 과학에서는 탐구(探究)한다고 한다. 둘은 닮았다. 신앙은 믿음이다. 믿느냐, 안 믿느냐다. 그런데 수행은 찾는 거다. 내가 누군지, 내가 정말 무엇인지 찾는 거다.”
출가 당시, 법륜 스님이 매력을 느낀 건 불교의 우주관이었다. “자연과학의 우주관과 불교의 우주관이 너무나 비슷하더라. 지금 돌아보면 인도의 우주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가 있다.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수많은 세계가 있다. 내가 늘 궁금해 하던 과학적 우주관과 너무도 일치했다. 그래서 불교에 더 호감을 느꼈다.”
과학도 종교도 물음을 통해 답을 찾아간다. 삶에서 스스로 물음을 던지는 게 왜 중요한가.
“우리는 내가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인생살이를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건 착각이다. 가만히 보면 내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주위 환경과 나의 습관에 의해 살려져 가고 있다. 그걸 카르마, 혹은 운명이라고 부른다. 습관과 무의식에 의해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의 힘에 의해 굴러가는 거다.”
수동적으로 살려져 가는 게 아니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내가 살아가려면.
“습관적으로 반응해선 안 된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하지 마라. 예전에는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냈다. 그걸 바꾸려면 어떡해야 할까. 화가 나는 걸 내가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야만 화를 낼 건지, 안 낼 건지 선택할 수가 있다. 삶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게 바로 ‘자각’이다.”
법륜 스님은 예를 하나 들었다. “남이 ‘너 고집 그만 피워라’라고 하면 참는다. 그건 변하는 게 아니다. 잠시 멈추는 거다. 그런데 본인이 ‘아, 내가 참 고집이 세구나’하고 자각하면 달라진다. 그때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자각의 출발점이 바로 ‘물음’이다. 부처님도 그랬다.”
부처님은 어땠나.
“부처님이 사춘기 때 성 밖으로 나갔다. 새가 벌레를 쪼아먹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사색에 잠겼다.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왜 하나가 죽어야 하나. 둘이 같이 사는 길은 없는가. 그런 물음과 사색, 그리고 자각. 그게 부처님 출가의 출발점이었다.”
법륜 스님은 중생과 붓다의 차이를 흥미롭게 설명했다. “주위 환경이나 습관에 의해 살려져 가는 삶을, 내가 살아가는 삶으로 전환하면 좋지 않겠나. 습관과 무의식에 의해 살려져 가는 사람을 ‘중생’이라 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 사는 사람을 ‘붓다’라고 한다.”
법륜 스님하면 다들 ‘즉문즉설’을 떠올린다. 그 출발점은.
“출가한 뒤 한동안 불교계에 실망했다. 복 비는 이야기만 있고, 죽어서 극락 가려고만 하더라. 인생이나 세상에 대한 탐구는 잘 안 보였다. 출가 후 10년쯤 됐을 때 이럴 바엔 과학자가 되는 게 낫지 않나, 생각도 했다. 그러다 부처님 생애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거기서 무엇을 찾았나.
“삶에 대한 구체성이다. 여인이 죽은 아이를 안고 부처님을 찾아와 하소연했다. 천민이 똥지게를 지고 가다가 부처님 옷에 똥물이 튀었다. 이런 구체성 앞에서 부처님은 어떻게 했는가,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이웃나라에 의해 자기 종족이 멸망했다. 그때 부처님 마음은 어땠고, 어떻게 바라보았나. 그렇게 부처님 일생을 하나씩 짚어가다가 깨닫게 됐다”
무엇을 깨달았나.
“내가 잘못된 불교를 보고서 실망했구나. 처음 출가하면서 인생을 탐구하려던 게 붓다의 가르침에 더 부합하는 거구나. 불교는 개인의 삶, 그 구체성에 뿌리를 두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거구나.”
법륜 스님도 처음에는 중학생ㆍ고등학생ㆍ대학생에게 불교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다 일반인으로 대상이 확장됐다. “기존 방식으로는 소통이 안 되더라. 남편이 바람을 피워요, 아이가 집을 나갔어요, 반찬 때문에 남편과 자주 싸워요. 이러한 삶의 구체성에 맞춤형 수행 지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예전의 좋은 법문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공개를 망설였다. 개인 프라이버시가 있으니까. 정토회 안에서만 하다가 주위에서 듣던 사람들도 공부가 된다고 해서 오픈하게 됐다. 그게 ‘즉문즉설’로 이어졌다.”
궁금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처자식도 없는 스님께서 어떻게 지지고 볶는 온갖 세상사에 속시원한 답을 주는지. 비결이 있나.
“선(禪)적인 표현을 빌리면 태평양 바닷물을 다 먹어봐야 짠 줄 아느냐. 한 방울만 먹어봐도 짠 줄 알지. 나는 거울 역할을 할 뿐이다. 내가 뭘 알아서 답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질문 자체에 모순을 갖고 있다. 나는 그 모순에 대해서 묻는다. 그러다 보면 질문자 스스로 자각하게 된다. 나는 답을 준 적이 없다. 상대가 거울에 비친 자기 고뇌를 보고 자각하는 거다. 제일 잘 됐을 때 대답이 이거다. ‘그거 별거 아니네요.’”
마지막으로 비상계엄 사태로 시국이 혼란스럽다. 어찌 보나.
“한 마디로 ‘불행 중 다행’이다. 불행은 21세기 대한민국에 계엄령 선포라니. 국가적으로 볼 때 창피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 하나 안 다치고, 6시간 만에 끝났다. 다행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다른 나라는 삼일 천하는 가지 않나. 대한민국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거고, 동시에 민주주의가 단단하다는 말이다. 한국의 정치는 후진적이지만, 한국의 국민은 시위문화와 뒷정리 등에서 세계가 부러워할 선진적 모범을 보였다. 성숙했다는 이야기다.”
지혜롭게 헤쳐가려면.
“비상사태라서 계엄이 선포된 게 아니고, 계엄을 잘못 선포해서 비상사태가 됐다. 여야는 초당적으로 협력해 이 문제를 이른 시일에 해결해야 한다. 왜 이런 불행이 반복되는가. 결국 시스템 문제다. 이 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시스템인가.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외교ㆍ안보ㆍ국방은 대통령이 하고, 나머지는 총리와 내각이 맡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국민적 합의 위에서 대통령의 권력 분산과 지방 분권을 담은 개헌과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개편을 이끌어내길 바란다.”
수행적 관점으로 보면 어떤가.
“내가 실수를 했다. 그럼 이미 일어난 실수를 받아들이고, 실수를 안 했을 때보다 더 낫게 만들면 된다. 똥을 방에 두면 오물이지만, 밭에 두면 거름이 될 수 있다. 물에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줍는다고 하지 않나. 다음 선거 전에 개헌을 통해 더 나은 시스템을 꾸린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이게 수행적 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