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천신만고(千辛萬苦)와 백리해(百里奚)

백리해(百里奚. 기원전 725~기원전 621). 바이두(百度)

백리해(百里奚. 기원전 725~기원전 621). 바이두(百度)

진(秦. 기원전 770~기원전 207)은 초기에 서쪽 변방의 약소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재 등용에 탁월했던 진 목공(穆公)이 고령의 백리해(百里奚. 기원전 725~기원전 621)를 재상으로 전격 발탁하면서 서북 지역의 강국으로 거듭난다.

이번 사자성어는 천신만고(千辛萬苦. 일천 천, 매울 신, 일만 만, 쓸 고)다. 앞의 두 글자 ‘천신’은 ‘천 가지 매운 일’이다. ‘만고’는 ‘만 가지 고생한 경험’이다. 두 부분이 합쳐져 ‘각종 괴로움과 고생’이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백리해는 아주 작은 제후국이던 우(虞)의 빈궁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이었으나 글을 익혔다. 차츰 학식이 깊어지자 고위 관료가 되어 세상에 뜻을 한번 펼쳐보고 싶은 야망이 자연스럽게 싹텄다.

그에겐 현명한 아내 두(杜)씨가 있었다. 그녀는 그의 꿈틀거리는 마음을 읽었다. 선 굵은 그녀는 가정은 자신이 챙기겠다며, ‘좁은 가정사에 얽매이지 말고, 넓은 세상에 나가 어렵게 갈고닦은 실력을 한번 발휘해보라’고 적극 제안했다.

백리해는 집을 떠나 대국 제나라로 향한다. 하지만 빨리 자리를 잡지 못해 유랑 걸식까지 하게 되는 상황에 처했다. ‘천신만고’ 그 자체였다. 다행히 건숙(蹇叔)이라는 제나라 현인을 조우해 걸식하는 신세를 면했다. 서로 이해가 깊어지자 둘은 의형제를 맺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그는 백리해가 출사를 결심할 때마다 매번 ‘그런 보스 아래로 들어가면 안 된다’며 더 기다리라는 조언을 했다.


목공에 의해 발탁되기 직전의 신분이 도주한 노비였던 것도 사실 백리해가 이런 기다림에 지쳤던 것과 관련이 있다. 건숙의 반복되는 반대에 지친 그는 썩 내키진 않았지만 우나라로 귀국해 무능한 군주 밑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숙의 우려대로, 그 무렵 강국이던 진(晉)의 헌공(獻公)이 우나라를 침략해 멸망시켰다. 고위 관리였던 백리해도 포로가 되어 적국으로 끌려갔다.

‘천신만고’는 계속 이어졌다. 포로 신분이었다가, 목공의 아들과 혼인하는 공주의 몸종에 포함되는 수모를 겪는다. 공주가 이동하던 중에 그는 초(楚)나라로 탈출해 숨어 살며 소를 키웠다. 어느 날, 인재를 목말라하던 목공은 백리해가 천하의 인재라는 정보를 접한다. 마음은 급했지만 만약 많은 돈을 지불하겠다며 일개 몸종을 돌려달라고 하면 초나라가 의심할 게 뻔했다. 목공은 시치미를 떼고 겨우 ‘염소 다섯 마리의 가죽’만 약속하고는, 며느리의 도망간 몸종이니 돌려달라고 초나라에 요구했다.

목공과 백리해가 첫 대면한 일화는 꽤 유명하다.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목공은 백리해의 나이가 많아 보이자 이렇게 질문했다. “70입니다.” “너무 고령이시군요.” 백리해가 유세(遊說)를 시작한다. “맹수를 포획하는 사냥에 쓰실 요량이라면, 제가 많이 늙은 게 맞습니다. 만약 국정에 참여시킬 계획이라면, 과거 강태공과 비교해도 저는 젊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목공은 비로소 백리해와 진지하게 부국강병책에 대해 며칠 연속 의논했다. 백리해는 우, 제, 진, 초 각국에서 몇십 년 ‘천신만고’하며 샅샅이 살핀 실태와 허실을 예로 들며 목공이 고심하는 여러 현안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소상히 밝혔다.

하늘은 위인에게 일부러 큰 시련을 내린다고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속담도 있다. 백리해에게 주어진 ‘천신만고’라는 긴 담금질 과정이 이제 마무리된 것일까. 오래 소식이 끊겼던 가족도 극적으로 재회할 수 있었다.

백리해가 집을 떠나고 부인 두씨도 ‘천신만고’를 겪어야 했다. 그녀는 타국으로 여러 번 이사를 했고 길쌈과 세탁으로 생계를 해결했다. 백리해가 가족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던 이유다. 하루는 백리해가 높은 지위에 올랐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는 아들과 함께 찾아간다. 재상 백리해를 만나자 이별하던 날의 형편을 노래 가사로 만들어 들려주는 기지까지 발휘했다.

백리해와 아내 두씨가 나이 70이 다 되도록 웅지(雄志)와 절개를 잃지 않고 계속 간직했기에 비로소 가능한 일들이었다. 천신만고와 해피엔딩 사이엔 ‘미끄러운 비탈길’이 숨어있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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