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신점 등 무속을 소재로 한 대중문화 콘텐트가 늘고 있다. 올 초 개봉해 1191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파묘’에선 컨버스화를 신고 굿판을 벌이는 신세대 무녀 이화림(김고은)이 눈길을 끌었다. 올 상반기 SBS 리얼리티 예능 ‘신들린 연애’는 신점·사주·타로 등 분야별 점술가들이 짝 찾기에 나선 모습을 그렸다. 현세를 초월한 영적 매개체로 여겨지며 은밀하게 찾던 무속인과 다른 이미지다. ‘무엇이든 물어보살’ 등 무속 콘셉트 차용 예능도 빈번해졌다.
미디어와 대중문화 속 무속인의 변화는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맞물린다. 올 초 이직을 앞두고 점집을 찾았다는 김주원(34)씨는 “면접 날 빨간색 속옷을 입으라”는 무당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김씨는 “새 회사에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마이크를 잡고 있다 등의 말에 자신감이 생겼다. 마음이 편안해진 것만으로도 돈값 했다”고 했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무속을 일종의 ‘스낵 컬처’(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기는 문화)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 모습이다.
때마침 경제 부흥이 이뤄지면서 그간 도외시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1980년 ‘진도씻김굿’이 처음으로 국가무형유산(옛 무형문화재)에 지정된 것을 시작으로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과 ‘동해안별신굿’(이상 1985), ‘남해안별신굿’(1987) 등이 잇따라 지정됐다. 풍어제·진혼굿 등을 하며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온 각지의 무당·박수들이 ‘인간문화재(무형유산 보유자)’로 재조명됐다.
정연학 비교민속학회장은 “우리 굿은 춤·음악·의상·미술 등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퍼포먼스”라면서 “80년대 들어 무속 재평가가 이뤄진 것은 우리 사회가 더는 미신에 휘말리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돌아봤다. 종합연희로서 굿의 보존과 전통 무속에 대한 관심이 이들을 양지로 불러낸 배경이란 뜻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현재 정치권이나 유튜브에서 각광받는 무속을 전통문화와 연결 짓는 걸 경계한다. 1970년대부터 무속현장 연구를 해온 이명준 전통민속문화연구소장은 “박근혜나 윤석열 정권에 무속 프레임을 씌우는 건 화살을 무속에 돌리려는 건데, 진짜 문제는 무속을 파는 모리배들이지 무속 자체가 아니다”라고 했다. 전통적으로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치성드리는 역할을 한 게 무녀들인데, 이를 벗어나 대권·국운 운운하며 도사를 자처하는 이들이야말로 사이비라는 주장이다.
이 소장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전통의 세습무당들은 고사 위기에 몰린 반면, 유튜브 채널에서 신점 흉내 내는 이들이 오히려 뜨는 역설이 벌어졌다. 쇼핑하듯 점집을 다니는 서울 강남 사모들에게 사이비들이 맞춤형 점괘를 제공하고, 이를 ‘내 운세가 이렇게 좋다’라고 과시하는 행태가 만연하다”고 했다. 역술·명리학을 제대로 익히지도 않고 듣는 이의 입맛에 맞춰 풀어주는데도 ‘용한 도사’로 소문나는 식이다. 이 소장은 2022년 대선 때 윤석열 당시 후보 선거캠프에서 활동한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씨도 그 같은 부류로 본다고 했다.
사이비가 정통을 제치고 부상하면서 전통 무속이 곡해될 뿐 아니라 고유한 가치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영화 '파묘'의 굿판을 두고도 일본식 음양사를 접목한 '변질된 샤머니즘'이란 논란이 일었다. 문화심리학자 한민 박사는 “현세주의에 기반한 무속이 돈벌이가 되는 흐름에 올라타 오히려 기성 종교가 이를 흉내내는 현상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전통의 무속이 가진 순기능을 인정하되, 양지로 나온 무속이 지나친 상업화에 치우치는 것 등을 근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무속과 전통춤 연구에 매진해온 양종승 민속기록학회장은 “군대에 군법이 있듯 무속엔 신법이 있다. 과거엔 도제식으로 영(靈)을 다스리는 걸 익히는 데만 10년 이상 걸렸는데, 요즘 신장 개업 무당들은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요사스러운 행위만 흉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무속 관리 사각지대에서 사이비들이 득세해 정치권까지 오염시키고 있다”면서 “차제에 제도권 안에서 무속인을 교육하고 관리·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