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남긴 마지막 응원 "내 아들은 주변 밝게 비춰줄거야" [무안 제주항공 참사]

제주공항 참사 희생자 정모(51)씨의 아들 A씨가 무안국제공항 2층에 설치된 가족 재난텐트에서 다음달 9일 치러야 하는 의사 국가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제주공항 참사 희생자 정모(51)씨의 아들 A씨가 무안국제공항 2층에 설치된 가족 재난텐트에서 다음달 9일 치러야 하는 의사 국가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무안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의 자녀 유족 A씨(20대)는 오는 9일 의사 국가시험을 앞두고 있다. 31일 오후 무안국제공항 2층에 설치된 가족 재난 텐트 안에서 만난 그는 “엄마의 마지막이 놀랍지 않았기를, 무섭지 않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A씨는 수도권의 한 의과대학 4학년생으로 신경외과 전문의를 지망하는 예비 의사다. 지난해 휴학했다가 군 문제로 복학해 이번 의사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지난 29일 사고 당일 광주로 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그는 “버스 TV에서 나오는 사고 영상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며 “다른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는데, 내 일상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했다.

A씨의 어머니 희생자 정모(51)씨는 약사였다. A씨가 어머니와 나눈 마지막 대화는 태국 방콕에서 제주항공 여객기가 이륙하기 전날 오전 9시쯤이었다. 정씨는 “시험 시간 집중하는 연습을 하자”며 보이스톡과 메시지로 의사고시를 앞둔 아들을 격려했다. 마지막 메시지 직전엔 “내 아들은 최선의 의사가 되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주변을 밝게 비춰줄 거야”라고 응원했다.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정모(51)씨와 아들 A씨가 참사 전날인 지난 28일 오전 9시 나눈 카카오톡 대화. 손성배 기자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정모(51)씨와 아들 A씨가 참사 전날인 지난 28일 오전 9시 나눈 카카오톡 대화. 손성배 기자

 
A씨는 텐트 안에서 태블릿PC로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우리 엄마가 이번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해 1년 더 공부하기를 원하지 않으실 것”이라며 A씨는 이겨내기 어려운 슬픔을 감내했다. 그는 “공항 바닥에 설치된 텐트가 불편하지만, 공통의 아픔을 가진 분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따로 밖에 있는 것보단 낫다”며 “같은 일을 겪은 주변에 계신 분들을 보면 안아주고 싶은 감정이 든다. 서로 위안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A씨 어머니의 시신은 지난 30일 오전 1시쯤 신원 확인을 마치고 이날 오후 6시까지 60시간 넘게 사고 현장 인근에 설치된 임시 안치 냉동고에 보관돼있다. A씨는 “시신이 비교적 온전한 편이라고 들었다”며 “장례를 빨리 치러드리는 게 자식이 된 도리일 텐데 애가 탄다”고 했다. 희생자 유족 중 일부는 시신 인도가 늦어지자 폭발 사고의 여파로 생긴 시신 편(조각)을 모아 합동장례를 치르고 위령비를 세우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제주항공 참사 현장 인근 철조망엔 사고 여객기를 몰았던 제주항공 기장 조종사의 유족(형)이 쓴 것으로 보이는 손편지가 걸렸다. 편지엔 “외로이 사투를 벌였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넌 이미 너무 훌륭했고 충분히 잘했으니 이젠 따뜻한 곳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철조망 곳곳엔 김밥과 빵, 술, 음료 등 희생자를 위로하는 물건들이 놓여 있다. 사고 여객기를 몰았던 기장과 부기장에 대한 애도 쪽지도 놓여있다. 쪽지엔 “살리고자 최선을 다했을 기장, 부기장님, 승무원들 정말 감사하다”며 “모두 좋은 곳으로 가셔서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썼다.

31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 추모메모와 술잔 등이 놓여져 있다. 장진영 기자 / 20241231

31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 추모메모와 술잔 등이 놓여져 있다. 장진영 기자 / 202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