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 개헌 논의해야" 60%…보수보다 진보가 더 원했다 [신년 여론조사]

지난달 12일 세종시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에 대통령 취임식 홍보물이 전시돼 있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기자

지난달 12일 세종시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에 대통령 취임식 홍보물이 전시돼 있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기자

 
개헌 논의를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6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새해를 맞아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12월 29~30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해 전화 면접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일으켜 탄핵소추 되면서 정치권에선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큰 만큼 여기에 맞춰 개헌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국민 여론도 이같은 정치권 기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일 개헌을 한다면 언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지금부터 논의해 최대한 신속히 추진’ 답변이 34%,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완료된 후 추진’이 26%였다. 늦어도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오면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60%에 이른 것이다. 반면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추진’은 32%, ‘모름·무응답’은 8%였다. 유성진 이화여대(정치학) 교수는 “(이번 계엄 사태는) 87년 체제가 갖고 있는 문제의 극단적 모습을 잘 보여줬다”며 “87년 체제라는 권력구조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폭넓게 공감대를 얻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이념 성향별로 봤을 땐 진보층(65%)이 보수층(55%)보다 빠른 개헌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지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지지층(53%)에 비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61%)이 차기 정부 출범 이전 개헌 논의 시작을 선호했다. 조국혁신당(70%)·개혁신당(74%) 등 원내 소수 정당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빠른 개헌 논의를 지지하는 경향도 보였다.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 방향에 관해선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유지가 적절하다는 응답이 33%였다. 반면 4년 중임 대통령제(43%), 의원내각제(10%), 이원집정부제(2%) 등 현행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55%로 더 우세했다. 연령별로는 18~29세(42%)와 30대(42%)가 현행 5년 단임제 유지 비율이 높았는데, 젊은 세대일수록 제도 자체보다 운영 방식이 문제라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다만, 현행 5년 단임제 문제만 따로 물었을 때는 ‘문제가 있다’(46%)와 ‘문제가 없다’(47%)는 의견이 엇비슷했다. 송미진 엠브레인퍼블릭 수석부장은 “현재 체제가 문제가 없다는 의미보다는 대통령제를 제외하면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체제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데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5년 단임제에 문제가 있다고 밝힌 응답자만 따로 떼어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물은 결과 27%가 ‘대통령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꼽았다. 뒤이어 ‘제한된 임기로 장기적 정책 추진 한계’(21%),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 저하’(19%) 등 지속적인 정책 추진이 어려운 문제가 지적됐다. ‘정권 유지나 교체를 목표로 하는 정치 갈등 심화’(15%), ‘여소야대 시 대통령과 국회의 갈등’(12%) 등의 응답도 많았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선거 제도에 관해서도 상당수 국민이 문제 의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제도 변화를 통한 정치 개혁에 관한 의견을 물은 결과 ‘개헌과 함께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 등으로 바꾸는 선거 제도 개혁도 논의해야 한다’(46%)는 응답은 ‘현행 대통령제에 대한 원 포인트 개헌만 추진해야 한다’(27%)는 응답보다 많았다.

특히, 조국혁신당(60%), 개혁신당(58%), 진보당(62%) 등 선거 제도 개편에 따라 의석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큰 소수 정당 지지층일수록 개헌에 못지않게 선거 제도 개혁에 큰 관심을 보였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지금 한국 정치의 핵심적 문제는 국회와 대통령의 권력이 서로 충돌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상대 진영의 주장을 거부하는 정치)”라며 “(개헌뿐 아니라) 다당제로 가는 결선투표제나 중대선거구제 등 선거 제도 개편이 같이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여론조사 어떻게 진행했나
이번 조사는 중앙일보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2024년 12월 29일~30일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가상번호) 면접 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응답률은 15.3%(6568명 중 1006명)이며 2024년 1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성별·연령별·지역별 가중값을 부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