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된다, 화해 못하고 가서"…눈물의 분향소, 1km 줄 섰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해야 하는데….

지난달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로 여동생을 잃은 A씨는 공항에 마련된 포스트잇에 “하늘나라에서”까지 적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흐르는 눈물을 닦은 뒤 “잘 지내”라고 이어 적었다. A씨는 “1월 1일 동생에게 새해 인사가 아닌 추모 메시지를 적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것도 못 해줘서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 나흘째인 1일, 무안 공항은 추모 분위기로 고조됐다. 공항 계단에는 “화해 못 하고 가서 후회된다. 늦었지만 보고 싶었다 많이” 등 유족들의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과 스크래치 페이퍼로 가득했다. 이찬규 기자

무안 제주항공 참사 나흘째인 1일, 무안 공항은 추모 분위기로 고조됐다. 공항 계단에는 “화해 못 하고 가서 후회된다. 늦었지만 보고 싶었다 많이” 등 유족들의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과 스크래치 페이퍼로 가득했다. 이찬규 기자

1일 오후 1시 기준 공항 계단에는 포스트잇과 스크래치 페이퍼 추모 메시지 301개가 붙었다. 이찬규 기자

1일 오후 1시 기준 공항 계단에는 포스트잇과 스크래치 페이퍼 추모 메시지 301개가 붙었다. 이찬규 기자

 
참사 나흘째이자 새해 첫날인 1일 무안국제공항엔 유족들의 그리움이 담긴 메시지가 붙었다. 공항 계단 손잡이를 따라 “후회된다. 화해 못하고 가서. 늦었지만 보고 싶었다 많이”, “여보 너무 보고 싶어요” 등 내용이 적힌 포스트잇과 스크래치 페이퍼(검은색 표면을 긁으면 색이 나오는 종이)가 이어졌다. 스크래치 페이퍼 속 무지갯빛 글자는 위로와 희망을 뜻했다. 이날 오후 1시 기준 공항 계단에는 추모 메시지 301개가 붙었다.

1일 오후 1시 기준 공항 계단에는 포스트잇과 스크래치 페이퍼 추모 메시지 301개가 붙었다. 이찬규 기자

1일 오후 1시 기준 공항 계단에는 포스트잇과 스크래치 페이퍼 추모 메시지 301개가 붙었다. 이찬규 기자

 
유족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공항을 찾아 애도와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김정아(41)씨는 “이렇게라도 유족을 위로하고 고인들이 편안히 영면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모(29)씨는 “마음 아프고 힘들 때일수록 연대가 필요하다”며 “더는 대규모 인파 사고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어린 새싹이 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이 안타까움을 어떻게 표현하겠냐”는 메시지도 보였다. 희생자 179명 중 미성년자는 14명, 20‧30대는 33명이다.


검은 스크래치 페이퍼 배경에 써내려진 무지갯빛은 위로와 희망의 의미다. 무안 공항에 붙은 추모 메시지는 1일 오후 1시 기준 301개였다. 이찬규 기자

검은 스크래치 페이퍼 배경에 써내려진 무지갯빛은 위로와 희망의 의미다. 무안 공항에 붙은 추모 메시지는 1일 오후 1시 기준 301개였다. 이찬규 기자

추모 메시지를 주도한 이근호 손편지운동본부 대표(66)는 “지인들이 보내준 메시지를 밤새 스크래치 페이퍼에 적었다. 유족들께서 슬픔을 견디고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추모 메시지를 주도한 이근호 손편지운동본부 대표(66)는 “지인들이 보내준 메시지를 밤새 스크래치 페이퍼에 적었다. 유족들께서 슬픔을 견디고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추모 메시지를 준비한 이근호 손편지운동본부 대표(66)는 “30년 전쯤 불의의 사고로 초등학생 아들을 잃어 누구보다도 유족의 아픔을 잘 안다. 세월호 참사 때도 현장에서 300여 개 추모 메시지를 받아 유족을 위로했다”며 “지인들이 보내준 메시지를 밤새 스크래치 페이퍼에 적었다. 유족들께서 슬픔을 견디고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해 첫날인 1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 추모객 줄이 공항 밖까지 이어졌다. 이찬규 기자

새해 첫날인 1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 추모객 줄이 공항 밖까지 이어졌다. 이찬규 기자

 
전날부터 무안공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는 시민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10시 분향소 앞에서 공항 입구까지 200여m 이어진 추모객 행렬은 1시간 만에 공항 밖까지 길어져 두 배가 됐다. 조문하기 위해선 1시간 넘게 줄을 서야 했지만 시민들은 계속 모였다. 오후 3시30분이 되자 추모객 줄은 1㎞에 달했다.

무안군청은 “무안공항 분향소에 많은 추모객이 몰려 혼잡하니 무안스포츠파크 분향소로 방문해달라”는 안전 안내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정혁(40)씨는 “7살 아이와 함께 왔다. 40분 넘게 기다리고 있지만, 시신을 인도받지 못해 애타는 유족들에 비하면 이 정도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무안공항 분향소에 4167명 등 전남 각지 분향소에 2만 6230명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1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제주항공 참사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1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제주항공 참사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시민들로 가득 찬 분향소엔 적막함과 통곡 소리가 교차했다. 광주에서 분향소를 찾은 예비 신부 노미래(34)씨는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영정사진 속에선 해맑게 웃고 있었다. 행복한 생활을 미처 다 하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영광에서 온 최기선(58)씨는 “합동분향소에서 울지 않고 추모하기로 다짐했는데 고인 사진과 명패를 보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며 “당분간 이곳에서 유족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나흘째인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에 세월호 유가족이 조문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나흘째인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에 세월호 유가족이 조문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사회적 참사 유가족도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세월호 참사 유가족 30여명은 노란 점퍼를 입고 분향소에 찾았다. 목포신항에서 신년 합동 차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김종기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께 깊은 위로를 드린다”며 “제주항공 참사 유족 대표가 경황이 없어 만나지 못했다. 진상규명, 재발 방지, 책임자 처벌 등에 대해 연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 왼쪽 두 번째)과 임직원들이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뉴스1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 왼쪽 두 번째)과 임직원들이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뉴스1

 
경제계에서도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일 오전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은 서울시청 본관 앞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를 찾아 무안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를 애도했다. 묵념을 마친 최 회장은 조문록에 “희생자 분들의 명목을 빕니다. 안전한 사회가 되도록 경제계가 힘을 보태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앞서 지난달 31일 오후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도 분향소를 찾았다.

경제계는 별도의 애도 시간을 갖는다. 무역협회는 오는 2일 시무식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 등 애도 시간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외벽 미디어에 희생자를 애도하는 영상을 오는 4일까지 송출한다.

기업들도 연초 예정된 신년 행사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이 참석하는 신년회를 3일에서 6일로 연기했다. 대한항공은 연초에 진행했던 새해 첫 비행기 탑승자 기념행사 등을 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