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오후정(五侯鯖)의 전설과 잡탕요리 짜후이(雜燴)

생선, 고기, 채소, 전 등을 섞어 끓이는 음식인 잡회(雜?). 바이두

생선, 고기, 채소, 전 등을 섞어 끓이는 음식인 잡회(雜?). 바이두

'오후정'. 식당가를 돌다보면 가끔 이런 상호의 음식점이 눈에 띈다. 무슨 뜻인가 싶은데 의미가 있다. 매우 맛있는 음식을 이르는 말이라고 인터넷 국어사전에 설명이 나온다. 음식점 이름도 여기서 따왔을 것이다.

오후정은 현대인한테 맛있는 음식은커녕 낯설기 그지없는 단어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꽤 유명했던 모양이어서 조선시대 문헌에 자주 보이며 산해진미의 대명사로 쓰였다. 일례로 조선말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4월령」에도 보인다.

"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을 하여 보세/(중략)/그물을 둘러치고 은린옥척 후려내어/ 반석에 솥을 걸고 솟구쳐 끓여 내니/ 팔진미 오후정을 이 맛과 바꿀소냐”

봄철 냇가에서 물고기 잡아 끓인 매운탕이 산해진미라는 오후정보다 더 맛있다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의 석학 다산 정약용도 오후정을 뱉어내고 푸성귀를 먹으라고 권했다. 권세를 따르지 말고 청빈한 생활을 즐기라는 의미다. 고급요리 오후정을 세속적인 출세에 비유했다.


참고로 정학유는 정약용의 둘째 아들이다. 그런만큼 농가월령가에서 오후정 먹는 대신 냇가에서 천렵하며 자연과 벗하는 생활을 즐겼으니 아버지 뜻에 따른 셈이다.

오후정이 도대체 어떤 요리이길래 옛사람들이 그렇게 맛있다며 요란을 떨었던 것일까?

오후정의 실체를 알기 전에 먼저 이 음식이 만들어진 유래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오후정(五侯鯖)은 고대 중국에 있었다는 요리다. 기원전 1세기 한나라 성제(成帝) 때 외척인 왕씨 일가가 권력을 휘둘렀다. 특히 황제의 외삼촌인 왕씨 형제 다섯 명의 권력다툼이 심했는데 세상에서는 이들을 오후(五侯)라고 불렀다.

이들 다섯 명 제후 집에는 재주 있는 손님과 식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다섯 제후가 서로 견제와 질투가 심해 각자의 손님이 다른 집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누호라는 대신만큼은 예외였다. 사람이 공명정대하고 사리 분별이 분명하니 다섯 제후들도 누구 하나 그를 독점적으로 차지하지 못하고 각각 따로 교류하면서 누호의 고견을 들었다. 이런 누호였기에 때가 되면 다섯 제후들이 따로따로 맛있고 진기한 요리를 만들어 누호에게 보냈다.

하지만 누호는 특정 제후가 보낸 요리를 맛있다고 먹으면 다툼이 더욱 심해질 것을 우려해 다섯 제후가 보낸 요리를 모두 뒤섞어 누가 보낸 음식인지 알 수 없도록 한 후 끓여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요리가 엄청나게 맛있었던 모양이다. 장안에 소문이 나면서 산해진미의 대명사가 됐다. 오후정이 생겨난 유래로 4세기 진(晉)나라 때 『서경잡기』에 자세한 내용이 실려있다.

매우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으로 알려진 오후정은 정확하게는 다섯 제후(五侯)가 보낸 음식을 뒤섞어 끓였다(鯖)는 뜻이다. 여기서 정(鯖)이라는 한자는 지금은 청어 정, 정어리 정이라는 뜻으로 쓰지만 『강희자전』에는 생선과 고기 전(肉煎)을 섞어 끓인 음식아라는 뜻도 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니 오후정은 갖가지 생선과 고기, 전과 채소 등을 모아 함께 끓인 잡탕 내지는 섞어찌개 같은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현대 중국에 오후정이라는 요리가 남아있을까? 널리 알려진 음식 중에서는 없는 것 같다.

다만 그 맥락을 이어받은 요리는 있다. 섞을 잡(雜)과 삶을 회(燴)자를 쓰는 잡회(雜燴)라는 음식이다. 글자 뜻 그대로 여러 종류의 잡다한 재료를 모아 은근한 불로 국물이 자작해질 때까지 끓여 먹는 음식이다. 중국에서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요리라고 하면서 그 뿌리를 2,100년 전 한나라 때의 오후정에서 찾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잡회, 중국어로 짜후이라는 요리를 흔히 우리 음식 잡채에 빗대어 비교하기도 하는데 음식 내용으로 보면 우리 잡채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생선 고기 채소 전 등을 섞어 끓이는 음식이니 굳이 비교하자면 예전 우리 전통요리인 신선로 내지 열구자탕과 닮았다. 우리 신선로가 잔치 음식이었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짜후이는 전통적으로 연회용 요리였다고 하니 이 또한 비슷하다.

지금은 우리나라 신선로나 중국의 오후정, 짜후이를 특별히 맛있다고 여기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래도 본질은 변함이 없는 듯싶다. 이것저것 섞으면 맛있다는 것이다. 융합과 조화의 맛이기 때문일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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