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내란죄 수사가 윤 대통령 앞에 멈춰 서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자충수와 윤 대통령의 저항이 결합된 난맥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경찰에 일임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한 뒤인 지난 6일 오동운 공수처장이 취재진을 뿌리친 채 경기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8일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기소할 방침이다. 경찰이 두 사람을 긴급체포한 지 29일 만이다.
12.3 비상계엄에 가담해 내란 혐의로 구속된 조지호 경찰청장(왼쪽)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뉴스1
검찰은 지난해 12월 8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긴급체포를 시작으로 계엄을 주도한 여인형·이진우·곽종근·박안수 사령관을 차례차례 구속하고 공수처에서 이첩받은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 주요 내란 피의자 대부분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경찰에서 구속송치받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도 오는 12일 구속기한이 만료되기 전 재판에 넘길 계획이다.
하지만 공수처가 검·경에 강력한 요구 끝에 이첩받은 ‘내란 우두머리’ 윤 대통령 수사는 약 3주째 답보 상태다. 지난해 12월 18일·25일·29일 세 차례에 걸친 출석 요구와 지난 3일 첫 체포영장 집행을 윤 대통령이 모두 거부하면서다. 1차 시도 당일 5시간 30분 만에 체포를 포기하고 철수한 공수처는 전략과 의지가 모두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체포 실패 이후 해법을 찾지 못하던 공수처는 체포영장 만료 하루 전인 지난 5일 오후 9시쯤 돌연 경찰에 “체포를 일임하겠다”는 ‘체포영장 및 수색영장 집행 지휘’ 공문을 보내 경찰의 반발을 샀다. ‘구속영장은 검사의 지휘에 의하여 사법경찰관리가 집행한다’는 형사소송법 81조와 “인력·장비·집행 경험에 있어선 우리나라에서 경찰이 최고”라는 근거를 들었지만, 경찰과 사전 협의 없이 ‘지휘’ 관계를 명시한 공문은 “실무를 모른다”(검·경 관계자)는 지적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주체와 관련 지난 6일 각각 언론 브리핑 중인 이재승 공수처 차장과 백동흠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부단장. 연합뉴스
백성흠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부단장은 지난 6일 브리핑에서 “공문에 법률적 논란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대한 검사의 일반적인 지휘·감독권은 삭제됐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 검사의 집행 지휘는 논란이 될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복수의 서울 소재 검찰청 검사장들도 중앙일보에 “검찰이 직접 수사로 발부받은 영장의 집행을 경찰에 일임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핵심 피의자 조사 역시 함량 미달 상태다. 공수처는 검찰로부터 김 전 장관 공소장과 피의자 신문조서 10여 개는 넘겨받았지만, 검찰이 신병을 확보했던 주요 사령관들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채 검찰과 수사자료 이첩 등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조사는 검찰에, 체포는 경찰에 외주를 주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윤 대통령 측이 연일 공수처 수사와 법원의 영장이 위법·위헌하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그 정도의 강한 저항을 생각하지 못했다”(이재승 공수처 차장), “(경호처의 저항 등) 예측 못 한 부분이 많이 발생했다”(오동운 공수처장)는 해명도 ‘준비 부족’이라는 비판을 키웠다. 참여연대는 지난 6일 “내란범 체포영장마저 집행 못 하는 공수처 한심하다”며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영장 집행에 나섰다가 반나절 만에 집행을 포기하면서 비판을 사더니 아예 체포영장 집행을 포기하겠다는 공수처의 무책임한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는 성명을 냈다. 결국 공수처는 하루 만에 공문을 철회하고 공수처·경찰의 공조수사본부 체제로 2차 체포 시도를 하겠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지난 6일 서울서부지법에 체포 기한 연장을 위한 체포영장을 재청구해 7일 발부받았다.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윤석열 대통령 관저 외곽 접근로 출입문 앞에 원형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김종호 기자
앞서 공수처는 내란죄 재판을 관할 중인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윤 대통령 측이 ‘영장 쇼핑’이라고 반발할 명분을 줬다는 지적도 받았다. 다만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12월 31일 체포영장을 발부한 데 이어 지난 5일 윤 대통령 측의 이의신청을 기각하면서 “공수처 수사 대상인 직권남용죄의 관련 범죄에 내란죄가 포함되므로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는 적법하다”고 밝혔다. 또 “공수처법상 관할 법원이 반드시 서울중앙지법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대통령실 및 대통령 관저의 소재지(한남동) 관할이 서부지법이므로 영장 청구는 적법하다” 등 윤 대통령 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전날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사법부에 의해 정당하게 발부된 영장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해 법치주의가 훼손된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국민들께 매우 죄송하다”며 “2차 집행에서는 비장한 각오로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겠다”고 사과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