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공인중개사 박모씨는 “작년에 집값이 많이 오른 데다 새해 들어서도 대출 금리가 크게 내려가지 않았다. 시국까지 어수선하니까 손님이 거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거래가 뚝 끊기니까 강남 집주인들도 호가를 낮추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지속되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이 장기화하면서 기세등등하던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도 상승세가 멈췄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9일 발표한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보합(0.00%)으로 돌아섰다. 작년 4월부터 이어지던 상승세가 9개월여 만에 멈춘 것이다.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 등 서울 외곽지역은 지난달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매수 심리가 위축되고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아파트값이 지방→수도권→서울 외곽→강남 아파트 순으로 둔화하는 모양새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84㎥(21층)는 지난달 35억5000만원에 팔렸다. 지난해 9월 같은 평형 4층 매물이 36억5000만원에 거래됐는데, 고층 매물인데도 3개월 만에 1억원가량 떨어졌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트’ 전용 84㎡(18층)는 지난 12월 말 26억15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10월 17층이 최고 28억5000만원에 팔렸던 데서 두 달 새 2억3000만원 하락했다.
외곽 지역도 수천 만원에서 1억원 이상 내리고 있다. 강동구 대장 아파트인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 59㎡는 지난달 말 14억8000만원에 거래돼 한 달 만에 1억원가량 빠졌다.
아파트값 하락세가 주요 지역까지 확대되면서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도 1년8개월 만에 10억원 아래로 내려왔다. 이날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월 서울 아파트 평균 거래금액은 9억9518만원으로 나타났다. 전달(11억3228만원)과 비교하면 1억3700만원 이상 줄었다. 서울 아파트 평균 거래금액은 2023년 4월 10억원을 넘어선 뒤 지난달까지 줄곧 10억원 선을 웃돌았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서울 아파트값 하락세가 얼마나 확대될지 여부다. 전문가들은 일단 상반기까지는 약보합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대출 금리가 좀처럼 내리지 않으면서 상급지 갈아타기도 주춤한 모습”이라며 “거래 건수 자체가 줄어 서울 아파트값 하락세가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작년 7월 9216건을 기록한 뒤 대출 규제가 본격화한 9월부터 3000건대로 뚝 떨어졌다(서울부동산정보광장). 지난 12월 거래량은 이날까지 2490건이고, 올해 첫 달인 1월 거래 건수는 175건에 그친다. 12월과 1월 거래량은 각각 이달, 다음 달 말까지 신고기한이 남아 있지만, 이 추세라면 1월 거래량은 12월보다도 더 적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도 “3~4월에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조금씩 걷히겠지만 정부가 최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실시(7월), 전세대출 보증 축소 등 대출 규제 강화를 예고했다”며 “매수 심리가 풀리기 어려워 거래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매매 대신 전·월세로 돌아서면서 전·월세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연초는 계절적으로 비수기인 만큼 설 이후 거래 흐름을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남구 개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연말·연초는 부동산 거래가 거의 없다”며 “탄핵 정국이 좀 해소되길 기다리는 대기 수요가 많다. 통상 신학기(3월) 전후로 거래 문의가 늘며 내려갔던 가격이 오르는 패턴을 보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