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건, 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 우승…산악연맹 "올림픽 종목 될때까지"

청송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 여자 스피드 경기에서 차유진이 얼음 벽을 오르고 있다. 사진 강레아 사진작가

청송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 여자 스피드 경기에서 차유진이 얼음 벽을 오르고 있다. 사진 강레아 사진작가

12일 경북 청송군에서 열린 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에서 이영건(31·노스페이스)이 남자 리드 부문에서 우승했다. 여자 스피드에선 차유진(25)이 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여자 리드 부문에서 우승한 신운선(45·노스페이스)은 준결선을 1위로 통과했지만, 결선에서 6위에 그쳤다. 오버행(90도 이상의 수직벽)에서 힘이 부치는 모습이었다. 남자 스피드는 사프다리안(33·이란)이 1위를 차지했고, 여자 리드와 스피드는 시나 고에츠(26·스위스)와 카탈리나 셜리(23·미국)가 1위를 기록했다.

국제산악연맹(UIAA)이 주최하는 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은 청송을 시작으로 스위스·프랑스·미국·캐나다에서 다섯 차례 치러진다. 이번 대회 전까지 세계랭킹 남·여(리드) 1위는 한국의 이영건과 신운선이었다. 아이스클라이밍 강국 러시아가 2021년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빠지면서 랭킹이 올랐다. 이번 대회는 18개국 118명이 참가했다.

청송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에서 신운선이 얼음 구조물을 통과했다. 신운선은 여자 리드 부문 6위를 차지했다. 사진 강레아 사진작가

청송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에서 신운선이 얼음 구조물을 통과했다. 신운선은 여자 리드 부문 6위를 차지했다. 사진 강레아 사진작가

아이스클라이밍은 스포츠클라이밍처럼 리드(얼음 구조물이 포함된 오버행 벽을 오르는 경기)와 스피드(얼음 직벽을 빨리 오르는 경기)로 나눠 치러진다. 스피드는 두께 25㎝의 얼음 조각 200여개를 쌓아 올린 높이 12m의 얼음 벼랑을 오르는 경기다. 아이스바일(뾰족하게 날이 선 빙벽 등반 장비)을 이용해 청빙을 찍으면서 다람쥐처럼 기어오른다. 정상급 선수는 6초대에 끝낸다. 리드는 높이 15m의 벽을 제한 시간 6~7분 이내에 올라야 한다. 공중에 매달린 ‘아이스 캔디’와 ‘아이스 큐브’에 아이스바일을 살짝 찍으면서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긴팔원숭이가 밀림 속을 헤치는 것과 비슷하다. 인공으로 만든 얼음 구조물은 청송대회만의 독특한 디자인이다. 유럽에선 얼음벽을 깎아 만들어진다.

등반 형태는 스포츠클라이밍과 비슷하지만, 45~50㎝의 아이스바일 두 자루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역동적인 테크닉과 동작이 가능하다. 바일을 잡은 팔 위에 한쪽 다리를 걸쳐 체중을 실은 후 이동하는 ‘피겨 포 (figure four)’가 대표적이다.  
UIAA는 이런 점을 앞세워 겨울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추진 중이다. 아이스클라이밍은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쇼케이스 종목으로 선보였지만, 이후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가 겹쳐 불발됐다. 특히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시범종목에 들지 못한 게 뼈아팠다.

아이스클라이밍은 유럽에서 태동했지만,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세계화에 앞장서 왔다. 동계스포츠 불모지인 몽골 등에 장비를 후원했으며, 청송대회가 열릴 때마다 이들이 한국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결과 몽골은 이번 대회 남·여 스피드에서 2위를 차지했다. 또 대회 전 스포츠클라이밍 강국인 인도네시아는 “한국 코치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등 아시아 각국과 협력 중이다. 한국 내 저변도 확대 중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 27명의 평균 나이는 38세로 엘리트 선수와 동호인 출신이 두루 포함돼 있다.  
청송군은 2011년 이후 13회째(코로나로 2년 미개최) 대회를 열고 있으며, 내년부터 5년 더 개최하기로 최근 UIAA와 합의했다. 또 영원아웃도어(노스페이스)는 지난 13년간 청송을 포함한 모든 월드컵에 글로벌 후원사를 맡았다.


오영훈(47) UIAA 집행위원은 “러시아가 빠진 가운데서도 참가국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스포츠클라이밍보다 더 익스트림하기 때문에 앞으로 젊은 층의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인공 구조물을 가미한 경기 벽 제작 기술은 동남아 등 더운 나라에서도 아이스클라이밍 경기를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