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어머니와 대화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군 검찰이 박 대령에게 적용했던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렸다. 뉴스1
2023년 7월 민간인 실종자 수색 작전에 동원됐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채모 상병(당시 20세)의 어머니가 임성근 전 사단장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1심 무죄 판결에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13일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따르면 채 상병 어머니는 지난 11일 대한민국 순직 국군장병 유족회 홈페이지에 ‘사랑하는 아들에게’란 제목의 편지를 올렸다. 채 상병 어머니는 박정훈 전 단장의 무죄 판결에 대해 “너무 좋았다”며 채 상병에겐 “아직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았지만 아들이 많이 지켜주고 힘을 실어주라”고 당부했다.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채모 상병 동기 1292기의 전역일인 지난해 9월 26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해병대예비역연대 관계자들이 채 상병에게 거수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지역군사법원은 지난 9일 해병대원(채 상병) 순직 사건의 민간 경찰 이첩 보류 및 중단 지시에 항명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 전 단장에 대해 “상부의 이첩 보류 명령이 분명하지 않았고, 이첩 중단 명령은 근거가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군형법상 항명죄가 성립되려면 정당한 명령에 불응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애초 정당한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취지다.
이에 채 상병 어머니는 편지에 “아들 희생에 죗값을 치러야 할 사람은 마땅히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매일매일 다짐한다”며 “억울함이 없도록 진실이 밝혀져야 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적었다. 그러나 임 전 사단장에 대해선 “아직도 미안한 마음과 변한 모습은 하나도 없고 본인만 빠져나갈 방법만 찾고 있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이렇게라도 아들에게 편지를 써서 알려줘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꼭 아들이 원하는 대로, 엄마가 뜻하는 대로 될 거라 믿는다. 좀 더 힘을 실어주고 끝까지 지켜봐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해 6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관련 입법 청문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뉴스1
앞서 임 전 사단장은 박 단장 1심 판결 이튿날(10일) 성명을 내고 “군 판사의 이번 조치는 일반 보병인 저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박정훈 대령 입장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 명령에 반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점에 대한 명시적 승인을 받지 않은 이상 항명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 전 사단장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됐으나 지난해 7월 경북경찰청은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채 상병 유족이 이의 신청을 하면서 현재 대구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도 고발장이 접수됐다.
한편 채 상병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원광대 건축공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2023년 5월 해병대에 입대했다. 같은 해 7월 18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 보문교 부근 수해 현장에서 구명조끼 없이 실종자 수색 임무를 수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14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특히 채 상병은 그의 부모가 결혼 10년 만에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얻은 외아들로, 부친(59)은 29년간 국가에 헌신한 전북소방본부 소속 현직 소방관이다.
남원=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