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상무 시절인 2007년 처음 CES에 참석했다. 이후 7년 연속 참석하다 2013년 이후 불참 기조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2020년 회장에 오른 뒤 2022년과 지난해 두 차례 참석했다. 구광모 LG 회장은 2013년 부장 시절 CES에 참석했지만, 2018년 회장에 오른 뒤 불참해왔다.
한때 ‘경제 올림픽’으로 불린 ‘다보스 포럼’도 열기가 시들하다. 20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막하는 올해 포럼에는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불참한다. 재계에선 3년 연속 참석하는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한화 김승연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정도만 모습을 비칠 예정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전 당시였던 2023년만 해도 4대 그룹 총수가 ‘전참(전부 참석)’했었다. 국내 정보기술(IT) 기업의 한 임원은 “CES나 다보스 포럼이 총수가 아닌 ‘CEO급’ 행사로 굳었다”고 설명했다.
한때 재계 총수가 총출동했던 국제 행사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CES가 대표적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기술 리더’ 총수들은 신기술 참관 목적으로 CES에 참석하곤 했다. 올해 CES에 총수가 불참한 4대 그룹의 한 사장급 인사는 “정보기술(IT)이 발달한 한국이 유독 주목했을 뿐 CES는 글로벌 기업 최고 의사결정자들이 가는 자리는 아니다”라며 “(총수 불참을)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재계는 오히려 CES를 PI(President Identity·총수 이미지) 구축에 활용하고 있다. 2024년 CES에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만든 로봇 개 ‘스팟’과 함께 등장해 연설한 정의선 회장이 대표적이다. 회장에 오른 이후 국제 무대에서 ‘대관식’으로 CES를 활용했다는 평가다.
상대적으로 젊은 ‘차기 총수’ 정기선(43)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지난해까지 3년 연속 CES에 참석해 기조연설까지 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HD현대그룹의 주력인 조선·기계 등은 전자·IT 등 CES 주류 기업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전통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는 경영자라는 점을 부각하기에 좋은 기회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세계화 어젠다를 주도하던 다보스 포럼도 영향력이 예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자유무역이 저물고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터지면서다. 특히 혁신경제를 주도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은 유럽의 겨울 대신, 매년 여름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리는 ‘선밸리 콘퍼런스’에 총 집결한다. 이재용 회장도 이 콘퍼런스를 종종 찾았다. 필요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과 개인적으로 교류한다. 1대 1 만남은 최근 업종별로 더 활발해지는 추세다. 정의선 회장도 지난해 10월 경기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도요다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회장을 공개적으로 만나 협업 의지를 확인했다.
역설적으로 4대 그룹 총수 중 최태원 회장이 유일하게 CES에 참석한 이유도 고대역폭메모리(HBM)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와 교류하려는 목적이 크다. 황 CEO는 올해 6년 만에 CES를 찾아 기조연설후 최 회장 등 파트너사 경영자들과 만났다. 10대 그룹의 한 PI 담당 부사장은 “일정이 분초를 다투는 재계 총수일수록 국제 행사 참석의 효율을 극도로 따질 수밖에 없다”며 “참석자의 ‘급’이 맞아야 하는 게 1번, 실익도 있어야 하는 게 2번 참석 조건”이라고 설명했다.